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cky Oct 10. 2021

self care와 selfish 사이 어딘가

 작년 인터뷰 기간에 여러 미국 병원의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은 레지던트들이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환자를 돌보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오프일 때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사나 액티비티 등을 조직하거나, 명상이나 요가 등 소위 마음챙김(mindfulness)을 위한 기회들도 많이 제공했다. 레지던트도 의사이기 전에 사람인지라, 힘든 수련 기간 동안 번아웃이 오지 않게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쉬는 거 그냥 쉬면 되지 호들갑이네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레지던트 고작 3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맛이 살짝 가려고 하는 스스로를 보자니 잘 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레지던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당연히 외롭고 힘든 길임을 각오하고 왔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이었다.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 익숙하지 않은 병원 시스템, 악명 높은 카운티 병원의 환자 수와 중증도... 하루 하루 겨우 버티고 쓰러져 잠들기를 반복하는 나날들이었다. 더군다나 타국에서 가족이나 친구 등 아무런 지지 체계 없이 앞으로 4년을 이렇게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러웠다. 한국행 표를 끊어야 하나... 생각하기를 수 차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보고싶어서 밤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심각한 향수병과 외로움이었다. 이렇게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니, 점점 자기 중심적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가까운 친구들의 소식도 별로 궁금하지 않고, 가족들과 통화를 해도 안부를 묻기 보다는 나의 힘듦만을 토로하고, 먼저 연락해오는 친구들에게는 답장만 간신히 하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을 생각할 여유 조차 없이 스스로의 힘듦에만 매몰되었던 것 같다. 몸의 자율신경계가 위협이 되는 자극을 인지하면 영양분을 근육으로 보내 최대한 빨리 도망칠 수 있게 하듯이, 일종의 방어체계가 작동하여 정신적 에너지도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양분을 받은 근육은 그 위험 상황을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반면, 스스로의 힘듦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정신 상태는 그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병원 이야기를 하다가 일주일 정도 내가 보던 환자가 그 동안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퇴원했다고, 나같은 인턴한테 뭐가 그렇게 고마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그래, 너는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엄마, 내가 지금 힘들어죽겠는데. 돕고 뭐고 할 것도 없어."

 "너는 힘들 때 혼자 땅파고 들어가는 게 도움이 되는 줄 아니?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해. 그게 너 스스로를 돕는 길이야."

 그게 그렇게 쉬우면 내가 성인군자를 했지 하며 틱틱대고 전화를 끊었지만, 엄마가 한 이야기가 한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남을 돕는 것이 스스로를 돕는 길이다?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말이었지만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 동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나? 싶으면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까지 몰려왔다. 세상 불행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우울하게 며칠을 보냈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고, 지금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는데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매몰되지 않게 나름대로의 해소 방법을 찾고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정신적 에너지를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해 건강한 음식과 꾸준한 운동으로 신체적인 건강을 챙기는 것 또한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 부딪혔다고 온 신경을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돌파구가 될 수 없다. 현미경을 가지고 관찰하듯이 나의 힘듦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보다는, 한발짝 물러나서 주위를 둘러보고 그래도 감사할 것을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진부하지만 감사할 것을 찾아보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손 내밀고 오히려 내가 도울 건 없는지 찾아보는 게 의외로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몇 번의 위기가 계속해서 찾아오겠지만, 스스로를 돌보되 이기적이지는 않게, 그 사이의 어딘가 균형을 찾아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끓여주던 보리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