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한테 교사가 최고라고요?
22살의 나는 참으로 불안했다. 21살에 겪었던 중이병 보다 무섭다는 대이병. 22살에도 불안함이 계속 된 걸로 보아 나는 대이병을 무사히 이겨내지 못했다.
처음 대학을 갓 입학한 스무 살에는 괜찮았다. 입학 할 당시에는 졸업 후 나아갈 방향이 명확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사회복지)와 부모님이 원하는(사범대)를 적절히 섞은 ‘특수교육’이 내 전공이었다.
요즘 사범대생은 교원임용 TO가 점점 줄고 있어 고민이 많다. 그래도 특수교육은 나 때만 해도 꽤 뽑았고, 지금도 20-30명(경기도 기준)은 뽑는다. 그래서 졸업하면 당연히 임용고시를 2-3년 준비해서 특수교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나름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여 진로를 정했으니까.
하지만 전공수업을 듣고, 인근 특수학교로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생각이 바꼈다. 특수교사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실현하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전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전공심화를 선택하는 학과 동기들과 달리 나는 복수전공(경제학)을 했다. 그리고 기업에 취직해 회사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바뀌긴 했지만 22살인 나는 그 때 당시 인사 직무을 희망했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모처럼 집에 내려갔다. 아빠에게 진로 문제를 얘기하며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빠는 나의 선택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여자 직업 중에 교사가 제일 좋다는 말이 뭐겠어? 네가 일반기업 들어가면 임원까지 올라갈 것 같아?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정신 차려. 여자는 교사가 최고야.”
물론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란 건 안다. 어느 아빠가 딸이 상처받길 바라고 의지가 꺽이길 원하겠는가. 나에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은 저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앞날을 위해서 한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내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학과 내 사람들은 다 교사를 준비하는데, 나는 같은 전공으로 회사원을 준비한다. 불안하네. 경상계열 전공자와 경쟁할 수 있을까. 나중에 잘 안 풀리면 어쩌지. 그래서 그냥 특수교사 할 걸 괜히 땅을 치고 후회하는 거 아니야.’
열심히 자기 살 길을 찾아나가던 겉모습과 달리 마음속 한 구석에는 불안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때 아빠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우리 딸 기업에 취직하게? 멋있다. 하긴 내 딸은 어디가서든 잘 할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