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잠잠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를 제외한다면, 2020년 현재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으는 건 단연 TV조선의 트로트 서바이벌 《미스터트롯》일 것이다. 지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미스트롯》의 후속작으로 출발한 이 프로는, 1회부터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심상찮은 기세를 뽐내더니 4회 만에 《미스트롯》의 종편예능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이윽고 6회에선 JTBC의 《스카이캐슬》을 밀어내며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 타이틀을 꿰찼고, 마침내 8화에선 마의 30% 고지를 가뿐히 넘어버렸다. 9년 전 KBS의 《1박 2일》을 끝으로 그 어떤 예능프로도 감히 넘보지 못한 ‘꿈의 숫자’를 한낱(?) 종편예능이, 그것도 중장년의 전유물인 ‘트로트’를 내세워 거머쥔 것이다.
시청률만 높은 게 아니다. 2월 20일 기준 멜론을 비롯한 모든 음원사이트 차트 100곡 중 무려 67곡이 《미스터트롯》 관련 음원이고, 매주 목요일 본방 직후 유튜브에 올라오는 하이라이트 동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가볍게 넘긴다.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영탁 등 주요 출연자들은 가히 아이돌이라 불릴만한 인기를 구가하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들의 창법분석이나 짤방, 다음 라운드 예측 등 온갖 게시물이 활발하게 올라온다. 이 정도면 ‘중년프듀’를 넘어, 가히 ‘국민프듀’라 불릴만한 화제성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스트롯》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무대가 일반적인 ‘트로트’로 묶일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는 사실이다. 가령 내 최애인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황윤성은 보이그룹 로미오 출신의 아이돌로, 예선에서 EDM과 격렬한 안무로 재구성한 <사랑 반 눈물 반>을 불러 올하트로 본선에 진출했다. 이어진 본선 1차 팀미션에서 같은 아이돌 출신들과 N.T.G라는 그룹을 결성한 황윤성이 부른 노래는, 결코 트로트라 볼 수 없는 <토요일은 밤이 좋아>였다. 본선 2차 1:1 데스매치에서야 비로소 좀 트로트다운 <자옥아>를 선곡한 황윤성은, 그러나 이번에도 박력있는 춤사위를 선보임으로써 ‘파워트롯’이란 말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비단 황윤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 《파파로티》의 실제 주인공인 성악가 김호중, 국악인 강태관 등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자신의 트로트에 개성을 불어넣는다. 심지어 ‘정통’ 트로트를 부른다고 평가받는 임영웅조차 라틴댄스와 뮤지컬이 가미된 <댄싱퀸>으로 호평을 받았고, 본선 3차 기부금 팀미션에선 황윤성의 도움을 받아 아이돌 안무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실제로 지금까지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이 선보인 무대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통점은 일명 ‘뽕짝’으로 불리는 강렬한 2박, 그리고 ‘꺾기’와 ‘뒤집기’처럼 어딘가 ‘트로트스러운’ 창법 두 가지 뿐이다.
도저히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의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이끌어낸다. 하나는 《미스터트롯》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온갖 장르를 무분별하게 끌어들임으로써 트로트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우려와 비판, 다른 하나는 트로트란 원래 그렇게 대중의 수요에 줏대 없이 휘둘려온 ‘근본없는’ 장르라는 냉소와 조롱이다. 놀랍게도, 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은 트로트에 대한 오래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演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믿음 말이다. 전자는 일본이라는 ‘부끄러운’ 기원을 애써 지워보고자 트로트의 ‘고유성’과 ‘정통성’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애초에 시작이 일본인만큼 트로트는 결코 ‘한국’가요가 될 수 없다고 비관한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단언컨대, 둘 다 잘못된 반응이다. 물론 트로트가 일본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트로트의 기원이 엔카라거나,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라는 주장은 번짓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장르로서의 ‘트로트’와 ‘엔카’가 확립된 건 1970년대로, 양자는 같은 시기에 독립적으로 정체성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간혹 엔카가 일본 자유민권운동기(1874~1890)의 연설가에서 시작한다는 글을 접할 수 있지만, 이는 엔카와 달리 선율이나 리듬이 느껴지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연설’에 가깝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엔카는 원래 ‘고운 노래’라는 뜻의 ‘염가(艶歌)’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나, 그것이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고 하여 일본어 발음이 같은 ‘연가(演歌)’로 바꾼 것이다.
만일 세간의 믿음처럼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라면, 구태여 트로트라는 이름을 붙여줄 필요도 없이 그저 演歌의 한국어 독음인 ‘연가’로 불렀으면 될 일이다. 실제로 창가(唱歌, 쇼오카)나 동요(童謠, 도오요오)처럼 일본에서 들어온 다른 가요는 그렇게 불리고 있는 반면, 트로트는 ‘연가’가 아닌 트로트다. 트로트에는 단순히 ‘K-엔카’로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치 침팬지가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같은 조상을 갖는 다른 종이듯, 트로트와 엔카도 같은 기원에서 출발해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았으나 끝내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별개의 장르인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시대의 ‘유행가’에서 시작해 2020년의 《미스터트롯》에 이르는 트로트의 기나긴 역사는 ‘일본’이라는 키워드만으로는 채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내력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트로트는 일본 근대음악의 골격을 유지하되 한국(조선)의 전통과 유럽의 근대음악, 영미 팝과 라틴음악, 심지어는 EDM과 케이팝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탄력성을 보여주었고, 시대를 선도하는 매체(media)를 꿰뚫어보고 이에 올라타는 기민함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지킬 만한 것이 없기도 했거니와)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기꺼이 ‘월경(越境)’을 감내하는 이러한 ‘족보없음’이야말로, 중장년층의 고루한 음악으로 전락한 엔카와 달리 아직까지도 트로트가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다. 그 점에서 《미스터트롯》은 어쩌면 100년에 가까운 트로트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글에서, 나는 손민정과 고바야시 다카유키의 분석에 따라 트로트의 역사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트로트의 역사는 소수의 도시 중산층이 향유하던 세련된 ‘유행가’였던 1920~30년대의 1기, 일본이라는 ‘과거’와 미국이라는 ‘첨단’에 맞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간 1960~70년대의 2기, 가라오케와 카세트에 힘입어 메들리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1980년대의 3기, 장윤정이라는 신세대 트로트가수의 등장으로 요약되는 2000년대의 4기, 마지막으로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낳은 2019~20년의 5기로 구분된다.
이 때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건 트로트의 생산자와 소비자, 무엇보다 둘을 이어주는 매체(media)다. 어떠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노래를 쓰고 불렀는지, 그리고 이를 듣는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결국 노래가 어디에 실려 어떻게 퍼져나갔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글은 나의 독자연구가 아니라 손민정의 『트로트의 정치학』을 충실히 요약한, 사실상 서평에 가까운 글임을 미리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