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나무가 움직인다면?
나무는 저기에 저렇게 서 있습니다. 만약 저기 서 있는 나무가 움직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무가 축 늘어진 가지들을 흔들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면, 나보다 키가 큰 나무들이 춤추듯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피해 다니기도 어려울 겁니다. 큰 나무의 가지에 숱하게 뺨을 맞을 것 같군요. 식물이 움직인다면, 동물은 혼비백산 도망 다니겠지요.
사자나 호랑이는 싸울 때 상대방의 목을 노립니다. 목을 물어 숨통을 끊는데, 나무의 어느 곳을 동물의 이빨로 문다고 해서 나무의 숨통이 끊어질 것 같지 않네요. 인간이 가진 총 몇 방 쏜다고 나무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난감해지는군요.
공룡이 다시 살아나 세상을 돌아다니는 상황을 묘사한 영화 <쥬라기 공원>보다 더 황당한 장면이 펼쳐지겠군요. <나무가 움직인다>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나중에 누군가 이 아이디어로 영화를 만든다면, 저에게 영화 초대권이라도 보내주려나.)
저의 책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에 ‘나무가 지구의 주인이라고?’라는 글을 담았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나무 같아.”라는 매형의 말에 영감을 얻어 쓴 글이지요. 그 글에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씀도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걸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지구를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지구는 엄연히 식물의 행성이다. 우리는 종종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베어내며 우리가 이 지구를 호령하며 사는 줄로 착각하지만 식물은 우리를 가소롭다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무게를 다 합한다 해도 식물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지구는 단연 식물이 꽉 잡고 있는 행성이다.’
나무가 움직인다면, 흔들거리는 가지들이 머리카락 풀어 헤친 귀신 같겠네요. 풀도 움직인다면, 뱀보다 무서운 존재이겠지요. 꽃이 돌아다니며 입 맞추고 짝짓기한다면 꿀벌은 할 일이 없어져 버리겠군요.
다행입니다. 저기에 그대로 나무가 서 있군요. 풀도 꽃도 움직이지 않고 바람에 몸만 살짝 맡깁니다. 식물(植物)이지요. 심어져(植) 있는 존재이지요.
반면에 동물은 움직입니다. 계속 움직입니다. 어떤 때는 왜 움직이는지 모르는 채 움직입니다. 먹고 사는 생존을 위해서도 움직이지만, 그냥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여행이라고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운동한다고 땀 흘리며 뛰어다니지요. 사람도 그렇지만, 개미나 달팽이 같은 작은 동물이 남긴 모랫바닥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참 이유 없이 이곳저곳 움직입니다. 동물(動物)은 움직이는(動) 존재이지요.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움직이는 인간에게 베어지기도 합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식물의 약점이지요. 동물의 약점은 무엇일까요? 동물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겠지요. 동물의 약점은 식물처럼 가만히 멈추어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멈추어 서 있는 것을 애초에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본능적으로 움직입니다. 동물의 유전자에는 움직임의 열쇠만 담겨있는 듯 싶습니다.
식물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동물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왜 저리도 계속 움직일까?’ 오래 사는 나무는 수백 년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데, 수십 년도 못 사는 동물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입니다.
동물 중 가장 지혜로운 동물은 가장 많이 움직이는 동물이 아닐 거예요. 지혜로운 동물은 동물이면서 식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 아닐까요. 멈출 줄 아는 동물은 일반 동물과 다른 차원을 사는 것입니다. 식물의 차원도 살 줄 아는 동물이지요.
며칠 전 저를 찾은 코로나 손님 덕분에 작은 방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꼼지락꼼지락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39도 넘는 고열 정도 나면 그제서야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있지요. 하지만 미열에 근육통 정도로는 해열진통제 먹어가며 틈틈이 핸드폰도 보고, 페북질도 하고, 두통으로 머리가 무거운데 세상사 시끄러운 뉴스도 훑어보며 다시 머리 아파합니다. 일주일의 격리 기간 읽어야겠다고 호기롭게 모아놓은 책들만 그대로 한 장도 펼쳐지지 않은채 방바닥에 고요히 그대로 쌓여 있는 채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은 나무처럼 잠시 멈추었지만, 이제 다시 세상은 시끄럽게 움직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전쟁을 하고, 조금 더 갖겠다고 자기 편끼리도 쌈박질을 합니다. 작은 바이러스로 나무처럼 잠시 고요를 느낄 수 있었던 세상이 이제 다시 시끄러운 동물의 세상이 되어갑니다.
동물은 아플 때 식물의 멈춤을 배우라는 기회를 가지게 되지요. 멈춤을 아는 동물은 식물의 지혜를 담은 동물입니다. 그 지혜를 나무가 줍니다. 나무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다행입니다.
나무는 오늘도 동물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소란피며 움직이지 말고, 내 곁에 잠시 가만히 있어봐. 그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