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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Dec 17. 2022

핸드폰은 여즉 못 고쳤지만

2015년 6월 24일

아침에 일어나서는 밥부터 먹었다. 심란했지만 밥은 잘도 넘어갔다.


어제 만난 한국인 친구가 여기 시장에 짝퉁폰 골목이 있다고, 거기 가면 폰을 정말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몇만 원에 핸드폰을 새로 살 수 있다면, 그게 중고더라도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카톡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수리고 나발이고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 채 며칠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어떤 기기든 살 수만 있다면 좋았다.


출발 전엔 아빠에게 메일을 남겼다.

그래도 꽤 희망찬 기분이었다. 오자마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예정된 셈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보는 낮의 멕시코시티에서, 어제 처음 만난 친구 뒤를 졸졸 따라 간 시장의 어느 골목에는 중고 핸드폰 가게들이 잔뜩이었다. 마치 남대문 시장 골목골목에, 중고기기 가게들이 늘어선 모양이었다. 가게 상인들은 그들보다 조금 더 연한 살색과 얕은 눈 깊이를 가진 우리가 지나가는걸 빤히 쳐다봤다. 우리는 가게 진열대에 늘어져있는 핸드폰을 흰자로 살펴보고, 가격을 둘러봤다. 생각만큼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대충 짝퉁 아이폰 사면 십만 원 정도면 사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가 오산이었다.

그래 하긴 중국에서도 그 흔한 짝퉁시장 구경이나 흥정 한번 안 해본 내가 짝퉁 핸드폰 시세는 어떻게 알랴. 그냥 싸다니까 싼가 보다, 했지, 너무 만만하게 봤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물어본 수리 가격은 3500 멕시코 페소 정도랬다. 대충 이십만 원 정도 되는 돈. 이 돈을 주고도 핸드폰을 새로 여기서는 안 살 것 같은데,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됐다.

아직 열어있는 가게도 전부가 아니었고 삼성 서비스센터에 남긴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조금 결정을 보류해보기로 했다.


다음의 행선지는 학생증 만들기였다. 이게 원래 나의 계획대로라면 멕시코시티에서 처음 해야 했던 일이었는데. 학생증이 있으면 꽤 많은 곳이 무료라고 해서, 꼭 만들어야지 했다. 대충 어찌어찌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길을 따라왔는데, 도무지 건물 앞에서 몇 호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까 핸드폰을 샀어야 했나 한참을 후회하다가 안쪽에 있는 아저씨에게 열심히 눈빛과 몸짓으로 구조신호를 보냈다.

아저씨는 나와 내 어설픈 estudiante 단어를 듣더니 익숙한 듯 302호를 눌러줬다. 무사히 학생증을 만들었다.

학생증을 만들고서는 원래의 계획을 따라 쏘다녔다. 미술관과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과 광장과 우체국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엽서가 없어서 실망했다. 그래도 밥도 제때 잘 챙겨 먹고 배고프지 않게, 그리고 걱정보다 많은 친절함과 다정함을 마주치며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머리에 남아있는 생각. 핸드폰은 어떡하지.



아래는 일기를 적어내린 그날의 엽서.

디에고 리베라 뮤지엄의 엽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사를 배우고 싶어졌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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