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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Jan 28. 2023

첫 번째 이동

2015년 6월 28일

푸에르토 에스콘디도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Puerto escondido. 멕시코 서핑으로 검색해서 초급자도 할 만한 파도의 해변을 가진 곳을 검색하다 나온 곳. 비행기를 타고 접근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동선도 크게 어그러뜨리지 않는 위치의 곳이었다.


긴 비행은 아니었다. 한 시간 반 남짓의, 그러니까 제주도 가는 정도의 마음으로 가는 거리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낮에 출발해서 낮에 떨어지고, 그러면 지금 리스트업 해둔 숙소를 차례대로 돌아보면서 나쁘지 않은 곳에 머물 계획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동네도 한 바퀴 둘러보고,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있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 반짜리 비행이 이렇게 몇 시간이나 연착될 줄이야. 처음에는 삼사십 분 연착인 줄 알았는데, 비행기 탑승 시간은 늘어지기만 했다. 서너 시간을 기다렸다. 배가 고팠다. 공항 안에 있는 식당들은 다 비싸니까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식사는 해야겠다 싶었다. 어디서든 멕시코에선 멕시코 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마음에 멕시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내가 아는 건 타코와 부리토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뭔가 다른 걸 먹어볼까? 하고 엔칠라다라는 메뉴를 시켰다. 소스가 부어져 있는 거대한 부리토 같은 것이 나왔다. 아래에는 콩이 깔려있었다. 왜 콩을 이렇게 뭉개놓는지, 텁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자꾸 먹었다. 나는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한 훈련이 거의 안되어있는 사람이었다. 2.5인분 양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엔칠라다를 열심히 해치웠다. 맛있었냐고 하면 그렇지 않았다. 남겼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배가 여전히 불렀고, 피곤했다. 세 자리 - 복도 - 세 자리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은 비행기였다. 비행기 자리는 여유로웠다. 비행기 탑승을 완료하고 둘러보니 그제야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어디를 갔을 때도 이렇게 나 홀로 동양인이었던 적은 없는데, 문득 무서웠다. 누가 해코지를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정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자꾸 까라졌다. 잠깐 눈을 붙이고 싶어 저 구석 텅 빈 세 자리에 가서 팔걸이를 다 올리고 드러누웠다. 나 말고도 여럿이 이미 숙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나도 잠깐 잤다. 언제 또 이렇게 비행기에 누워보겠냐 하면서.


내리고 나니 밤에는 별이 총총이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본 대로, 미니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야 했다. 늦은 밤이라 미니버스 티켓부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눈치껏 표를 사고, 줄을 섰다. 미니 버스라고 불리는 승합차에는 또다시 서양인들이 가득이었다. 눈치를 보니 다들 스페인어가 아주 수월해 보였다. 여기는 정거장 표지판도 없는데 잘못 내리면 어떡하지, 승모를 잔뜩 세우고 불러주는 정류장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숙소를 고르고 자시고 할 수도 없었다. 찍어뒀던 호스텔 앞에서 내려 방이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있었다. 야외 수영장을 지나 향한 숙소 건물 외벽에는 도마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벌레만 아니면 됐지 하고 방에 들어갔다. 에어컨은 없었다. 사람도 없었다. 선풍기를 틀고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한국의 오래된 괴담을 떠올리면서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괜히 이 외딴 마을에 온다고 했나. 한국인도 별로 오지 않는 곳인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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