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6일
호스텔에서 만난 S와 세뇨떼와 뚤룸 유적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 동네 사람과 함께했던 아쿠말 나들이와는 다르게 우리끼리만 찾아가는 거라 긴장하면서 집을 나섰다. 교통편도 대충 알아봤고, 돈도 얼추 챙겼고, 물에 들어갈 거니까 수영복 위에 옷을 걸쳐 입고 쪼리를 신고 털레털레 길을 나섰다.
Ceñote라고 적은 세뇨떼는, 동굴 안에 물이 고여있는 곳이다.
멕시코에는 여러 세뇨떼가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Dos ojos, 두 개의 눈이라는 뜻의 장소였다. 동굴이 크게 두 개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
입장료를 받는 입구에서부터 실제 세뇨떼가 있는 곳까지는 삼 킬로 정도로 나왔는데, 구글 맵 기준으로 걸어서 삼십몇 분 정도로 찍혔던 것 같다. 워낙 많이 걸어 다니는 여행이라 삼십 분쯤이야 껌이지라고 생각했다. 뚜벅이의 숙명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고통을 더는 방법이기도 했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날은 더웠고, 비포장도로는 우리 발 뒤로 모래먼지를 풀풀 날렸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 아마 직원분이셨던 것 같다 - 차는 우리를 약간 지나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우리가 가까워질 때쯤 열려있던 창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더니 걸어가는 거냐고 묻더니 타라고 손짓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라시아스를 몇 번이나 외치며 얻어 탔지 뭐.
차는 매우 덜컹거렸다. 몇 분을 차 안에서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체하고 있으려나 새삼 꽤나 긴 거리였다는 걸 체감했다.
그렇게 도착한 세뇨떼의 물은 아주 차가웠다.
처음에는 그래도 더운데 시원하고 좋다며 몸을 담갔다. 에어컨 없는 차에서 얼굴이 벌겋게 익어 왔거든. 하지만 물에서 몇 번 물장구를 치고 몸이 정말 식고 난 이후에는 추워서 다시 못 들어가겠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입장료가 아까워서 물에서 못 나오고 이 눈알(ojo)에서 저 눈알(ojo)로 옮겨 다니며 놀았다. 우리는 장비도 경험도 없어서 위에 둥둥 떠서 스노클링이나 했지만, 저 깊은 아래에는 후레시를 들고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깊숙이는 꽤나 어두워 보이던데, 무섭진 않을까 싶었다.
수면가까이에는 닥터 피시로 추정되는 작은 물고기 떼들이 돌아다녔다. 얼마 전에 까진 내 무릎 상처를 뜯어먹으러 한 떼가 주변을 아른거렸다. 무섭거나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간지러움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아서 계속 도망 다니면서 수영을 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주차장에서부터 두리번거렸다.
적극적으로 히치하이킹할 자신은 없었지만 아까처럼 우리가 선뜻 누구를 태워주겠다고 하지는 않을까 기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리도 저 무리도 죄다 네다섯 명이었다. 우리 둘을 태워줄 만한 차가 잘 보이지 않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기 시작했다. 운전을 했으면, 차를 빌렸으면 좋았을 텐데 벌써부터 아쉬웠다.
그러던 중 앞에 가던 차가 또 멈춰 섰다. 이번에는 후진을 했다. 프랑스인 남자애 넷이 가득 차있는 차였다. 태워주겠다고 해서 염치 불고하고 엉덩이를 욱여넣었다. 얏호! 몇 안 되는 여자라 좋은 순간이라 여겨졌다.
그러고 나서 간 뚤룸 유적은 아주 아주 아주 더웠다.
대낮에 도착해서 아마 더 그랬을 거다. 동네는 너무 예뻤다. 바닷가를 끼고 서있는 피라미드와, 선인장 사이의 거대한 이구아나들은 계속 우와 하는 소리를 내뿜게 했다.
하지만 신기한 광경에 기운이 나기보다는 작열하는 태양에 기운이 뺏길 뿐이었다. 아까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당장 눈앞에 세뇨떼가 있다면 그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되든 뛰어들고만 싶었다.
오후에는 사람도 많아지고 추천하지 않는대서 오전에 세뇨떼를 간 거였는데, 다음번에 차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날이 다시 온다면 무조건 아침 일찍 뚤룸, 그리고 세뇨떼를 가리라. 그렇게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