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tacura Sep 12. 2022

하늘나라 할머니

"엄마, 하늘나라 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하늘나라에 간 거야?"


이제 막 다섯 살을 넘긴 쌍둥이 아들은 하늘나라 할머니, 어제 보고 온 할머니, 엄마의 엄마가 모두 뒤죽박죽이 되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골똘히 생각을 마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내가 그랬듯, 나의 아들도 아직은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 어떻게 할머니 뱃속에서 나왔는지, 하늘나라 할머니는 여기 없는데 어떻게 엄마를 낳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가 계시지 않으니, 거기에 남동생마저 명절에 더 바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명절 당일에는 모이고 싶어도 모이지 못하는 가족이 되어 버렸다. 명절이 이틀이나 지난 오늘에야 아버지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들렀다. 


오래된 묘지가 즐비한 얕은 산 입구에 시에서 운영하는 작은 납골당 하나뿐이었던 곳이 올 때마다 정비된 묘지와 화려한 납골당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이젠 일대가 거대한 추모 공원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계신 소박하고 작은 납골당만이 16년 전 모습 그대로이다. 


꼭대기에서 두 번째 줄에 계신 엄마는 높은 데서 시원하게 내려다보라고 자리 잡아준 오빠(나의 외삼촌) 바람대로 그렇게 계신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안 보인다는 아이들을 들어 올려 노란 꽃밭에서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니 사진을 보여 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1년 간은 거의 매주 찾아가 울다 오곤 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도 울고, 심야 버스를 타고 퇴근하면서도 울고, 맥주 한 캔 따놓고 앉아서도 울고, 자려고 누워서도 울고, 주말마다 찾아와서 또 울었다. 언제까지고 엄마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1년쯤 지나니 우는 횟수도 뜸해지고, 3년이 지나니 마음도 평안해졌다. 꼭 10년이 지나서 아이들을 가지고 낳았는데, 지금은 엄마를 보러 가도 울지 않는다. 마음이 그때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차를 대고 올라온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쪽 어딘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목구멍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서러운 울음소리... 


"엄마, 저 사람은 왜 울고 있어? 가볼까?"


아이들이 반응한다. 


"안돼, 하늘나라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우는 거야. 가지 마."

"너무 보고 싶은데 왜 우는 거야?"

"하늘나라에 가면 다신 볼 수 없거든. 그래서 우는 거야."


아이들이 내 말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하늘나라 할머니 보러 다녀오겠다고 하니까, 그럼 하늘나라에 갔다 오는 거냐고 묻던 아이들이다. 


얼마 안 있어 남편이 올라왔다. 아이들과 먼저 보내고 발꿈치를 들어 엄마 사진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눈물이 났다. 이젠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저 서러운 울음소리에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목에서 울컥 울음이 터지려 했다. 아이들이 멀리 가지 않아서 소리 내지 않으려 했는데, 울음이 나 버렸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가 따라오지 않은 게 이상해서 인지,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인지 발걸음을 돌려 '엄마~'하며 돌아온 아이들은 별말 없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눈물을 훔치고 아이들을 내려다보니 안심이 되는 듯 울었냐고 물었다. 


가여운 엄마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엄마'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사는 의미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아 서럽고 힘들었다. 10년 뒤 아이들을 낳고 내가 '엄마'가 되면서 무너지고 비어 버린 인생이 다시 채워졌다. 아이들은 내게 그런 존재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인생, 그것이 엄마가 바라는 나의 인생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을 날리는 눈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