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작년 초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시작이 변변치 않았다. 일감이 없어 낮에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보였다. 길고양이인데 우리 집 테라스에서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고 있었다. 어찌나 달게 자는지 왠지 내가 조용히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숙면이었다. 녀석과는 금방 친해졌다. 종종 먹을 것을 주니 나를 잘 따랐다. 다가와서 몸을 비비는데, 몸통에 털이 비어 있는 곳이 보이고, 귀 끝에도 상처가 아문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챙겨주고 싶었다. 일 마치고 들어올 때면 자동차 후방 카메라로 이 녀석이 나를 반기면서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남은 순대를 포장해왔는데, 혹시 좋아할까 하여 몇 개를 줬더니 잘 먹었다. 그래서 임시로 이름을 순대라고 지었다. 사실 순대는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집 이웃이 강아지, 새 등을 키우는 동물 애호가인데, 마당에 항상 고양이 먹을 것을 두고 길고양이들이 먹게 한다. 그중 어떤 고양이한테는 목걸이를 걸어두기도 한다. 이 녀석도 그런 고양이 중 하나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금 저 녀석은 이 세상에 없다. 어느 날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이 녀석이 다리를 쩔뚝거리며 집 외벽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쫓아갔는데 더 멀리 가려고만 한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편이 찡하게 아팠다. 걱정과 안타까움이 한순간에 휘몰아치는 느낌이었다. 얼른 볼일을 보고 다시 돌아와서 녀석을 계속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고 잠시 집으로 들어간 사이 앞집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찾아내어 병원으로 데려갔다. 녀석의 치료 상황이 궁금했는데 딱히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앞집 아주머니는 내 차에 깔린 것으로 의심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사실상 내가 그런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고, 고양이가 치료받고 돌아오면 설명할 기회가 있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여기저기 물어서 알아보니 수술은 받았는데, 배변 활동을 못 하고 있고, 그 시간이 꽤 지났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슬픈 결말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후 얼마 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몇몇 일들을 새로 맡게 되었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중간중간 고양이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일부러 걱정스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냥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이미 죽었다고 한다. 짐작을 하고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덤덤했다. 한편으론 허망하기도 했다. 이 녀석은 왜 내 앞에 그렇게 나타났다가 이렇게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다쳐서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종종 그 녀석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숨으려는 모습과 그것을 보면 느낀 가슴 찡한 안타까움이 생각난다. 이전 회사를 6년여 다녔는데, 마지막 몇 년은 정말 감흥 없이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했다. 뭔가에 마음 썼다간 괜히 해야 할 일만 더 많아지고,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만 져야 하는 분위기. 혹 잘 돼도 회사에서는 성과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의욕을 갖고 무언가를 한다는 게 덧없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답답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문제라고 여기고 바꾸려 하지 않고, 체념하고 비꼬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무덤덤해졌다. 무엇에 대해서도 간절함이 없었다. 이런 마음에 변화가 오게 된 계기가 이 녀석이었다. 징을 울리듯, 벽에 금이 쫙하고 가듯이 그 날을 계기로 난 내 마음을 의식하게 됐다. 지금은 참 절절한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인도네시아, 한국 트렌드를 살펴보며 내 사업에 적용할 것이 없는지를 꾸준히 찾는다. 힘들긴 하지만 의미 있다. 이 고양이도 그랬다. 같이 있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리고 안타깝게 다시 보진 못하지만 나에겐 참 큰 의미가 있었다. 잘 가 순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