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끌리는 이 다큐
요즘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푹 빠져서 퇴근하고 나면 에피소드 몇 개씩 보고 잠자리에 들곤 한다.
스케일로 보나 구성상으로 보나 대작도 아니고 뭔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뭔가 편하고 빠져 들면서 보게 된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는데 아직 이유를 찾진 못했다.
구성은 참 간단하다. 한국계 요리사 로이 최와 영화감독이자 배우 존 파브로가 함께 요리를 하거나 주요 식당을 찾아가서 주방장을 만나서 요리를 배워보고, 맛보고 웃고 떠든다. 두 사람은 영화 ‘아메리칸 세프’를 계기로 만났다. 존 파브로는 감독 겸 주연을 맡았고, 로이 최는 요리를 자문했다. 그리고 ‘아메리칸 셰프’는 로이 최의 인생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로이 최는 2010년 KOGI라는 푸드 트럭을 이끌고 자신만의 타코 요리를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트위터를 통해 푸드트럭이 갈 장소를 예고하며 판매하는 방식도 화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별다른 MSG가 없다. 누구를 대단하다고 떠 받들지도 않고, 어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몰아가지도 않는다. 레시피를 자세하게 소개하지도 않는다. 요리를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먹는다.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게 아니라. 만든 주방에서 선 채로 먹는다. 맛있게 먹고 꽤 많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오직 맛에 대해서만 칭송을 한다. 유일한 양념이라면, 존 파브로의 인맥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몇몇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다는 것뿐. 하지만 이것도 그들을 중심에 두진 않는다. 중심에는 늘 요리가 있다.
내레이션도 없고, 인터뷰도 없고, 자막도 없고, 기타 그럴싸해 보이는 특수촬영도 없다. 요리 과정을 보여주려고 세트나 테이블을 예쁘게 꾸며 놓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표현 기술들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음식을 즐기는 두 주인공, 그리고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셰프들만 나온다.
눈에 보이는 영상의 기술적인 면은 단조롭지만 내용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존 파브로는 음식을 사랑하고 겸허한 자세로 요리를 배우는 듯 하지만 적절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대화를 이끌어 내고, 시청자가 알아야 할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시즌2 첫 편에서 쿠쿠밥솥을 이용해서 밥 짓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우리 집에서도 쓰는 비슷한 전기 압력 밥솥이다. 존 파브로는 복잡한 버튼과 조작법에 멘붕이 온다. 전원을 켜니 ‘쿠쿠가 맛있는 밥을 지을 준비가 되었습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그것을 로이 최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익숙한 저 말이 영어로 들을 때는 생경해진다. 존 파브로는 정말 그런 말을 하냐고 되묻는데 분위기가 유쾌하고 재미있다. 나에게 너무 친숙해서 특별할 것 없던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러한 소재와 접근법은 나중에 인도네시아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What’s-on-netflix. com 사이트를 보니 2019년 9월에 공개된 시즌2에 이어 이번 달(2020년 2월) 새로운 시즌이 공개된다고 한다. 부지런히 봤는데도 아직 볼 게 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