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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 겨울 Mar 01. 2019

고마워요, 택배 요정

행복의 맛, 돈가스 카레덮밥

 치아 치료 이후 멀리했던 카레덮밥이 오랜만에 먹고 싶었다. 루로 된 일본식 카레 말고, 우리나라식 노란 카레가루로 만든 카레라이스 말이다. 집에 비축해둔 카레가루는 많은데 하필이면 모두 매운맛이었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장본인인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밖에. 

 요즘은 식품 회사마다 다양한 종류의 카레를 내놓고 있는데, 그중 내가 선호하는 회사에서 만든 허니 망고 카레를 퇴근길에 사오라고 부탁했다. 명확하게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을 알려주면 제대로 사올 법도 하건만, 남편이 사온 것은 다른 회사 제품이었다. 허니 망고 카레라는 이름은 같았지만, 내용물이 일반 카레와 별 차이가 없어 한 번 사보고는 다시는 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카레 브랜드를 구별하는 것은, 진빨강 립스틱과 연빨강 립스틱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미션일 거라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다. 어쨌거나 초등학생인 두 녀석들과 초등학생 입맛인 남편이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웍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길이대로 길게 썬 당근과 자그마하게 썬 마늘종을 볶았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약간의 무염버터를 넣어 풍미를 더했다. 볶은 당근과 마늘종을 덜어놓고, 웍에 기름을 조금 더 두른 뒤, 잘게 다진 양파를 넣어 갈색이 돌 때까지 볶았다. 큼지막하게 썬 당근과 감자도 넣어서 겉이 익도록 살짝 볶았다. 역시 이번에도 마지막에 무염버터를 한 숟갈 넣어 풍미를 더했다. 개인적으로는 버터의 고소한 풍미를 좋아해서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조금 더 칼로리를 낮게, 건강하게 먹고 싶다면 넣지 않아도 된다. 채소를 볶은 뒤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이고, 카레가루를 넣었다. 한번 더 끓일 것이기에 채소를 속까지 익힐 필요는 없다. 카레가루는 물기 없는 그릇에 담아서 웍에 툭 쏟아 넣으면 말끔히 넣을 수 있다. 카레 봉지를 웍 위에 들고 가루를 털어 넣으려고 하면 수증기에 의해 카레가루가 봉지 입구에 들러붙어 정량이 다 나오지 않는다.

 택배 요정인 남편이 동의도, 통보도 하지 않고 배달시킨 냉동 돈가스를 튀겼다. 웍에 기름을 굽는 용도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두르고, 냉동 돈가스를 굽듯이 튀겼다. 웍에서 다 튀겨진 돈가스를 꺼낼 때 집게로 잡고 기름을 탈탈 털어주었다.

밥공기에 밥을 담아서 볼록한 모양을 만든 뒤 접시에 엎고, 밥 옆으로 카레를 둘러 부었다. 튀긴 돈가스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카레 위에 얹고, 밥 위에는 달걀프라이를 얹었다. 볶아서 덜어놨던 당근과 마늘종도 얹고, 월남쌈을 해 먹고 남은 무 싹도 얹었다. 무 싹은 냉장고에 좀 오래 있었던 터라 시들시들했는데, 차가운 물에 잠시간 담가두니 곧 생생하게 살아났다.

 한 그릇 음식이라서 김치는 넉넉하게 두 덩이 내고,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용 깍두기도 냈다. 오늘따라 나도 아이들만큼이나 맛있게 먹었다. 아마도 오전에 운동을 해서 입맛이 더 당긴 모양이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인 ‘운동’을 실천하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오전에 배낭을 메고, 집 앞 개천을 따라 5km를 걸었다. 어제 내린 꽤 많은 양의 비로 양재천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가고, 냇가에 사는 정다운 오리들도 가만히 앉아 햇살을 쬐고 있었다. 물이며, 마른 풀밭이며, 길까지 모두 파란 하늘빛에 물들어 있었다. 문득 하늘 위를 쳐다보는데 왜가리인지 뭔지 모를 하얀 새가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날개를 멋들어지게 활짝 펴고 여유롭게 활강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도 들러 색색 볼펜 꺼내 노트에 필사도 하고, 새로 나온 책들도 구경했다. 무의미하게 시간 죽이는 일을 요즘 좀 했었는데, 오랜만에 알차게 시간을 사용해서 뿌듯하다.



<오늘의 식단>

- 구운 채소와 돈가스를 얹은 카레 덮밥

- 배추 도사, 무 도사, 배추김치와 깍두기






푸드 에세이 <소박하고 다정한>은 3월 4일 종이책으로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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