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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ug 04. 2020

두 번째 고향을 떠나다

가끔 놀러가야지

 태어나고 자란 창원의 집을 떠나 김해에 있는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날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서울로 유학 간 오빠가 자리를 비운 집에서 나는 3시간 가까이 혼자 울었다. 내일 떠나면 내 인생에서 가족과 함께 오래간 살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는 직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뒷 베란다에 쳐진 촌스러운 나무발을 젖히며 활짝 웃는 어머니의 표정, 그 앞에서 몸집과 비슷한 커다란 양파링을 든 어린 시절의 오빠와 내가 찍힌 사진. 그리고 뷰파인더 너머의 아버지. 16살에 처음으로 한 시절과의 이별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이별을 더 겪었다. 애인과의 이별, 대학시절과의 이별, 이렇게 저렇게 만난 친구들과의 이별. 한껏 가까웠다가 한순간에 멀어지는 것은 대상이 무엇이든 정해진 공식처럼 적용됐다. 아무리 겪어도 고통스럽지 않기는 어려운 '헤어짐'이라는 상황을, 20대의 나는 두려워 했다. 그 후 좋은 일이나 좋은 상황이 생겼을 때도 이별을 상상하며 심리적 완충을 두려고 했다. 


 올해 이사를 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사를 가게 됐고, 살던 동네에 다시 집을 구해보려했지만 녹록치 않았고, 그래서 그냥 10년간 살던 서울의 한 동네를 떠나게 됐다. 모든 헤어짐이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인연이 시작됐다가 한순간에 끝난 것이다. 4년 전 취업을 하고 난 뒤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원하는 조건의 좋은 집을 원래 살던 동네에서 손쉽게 구하는 바람에 떠나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 이 동네와 떨어질 운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헤어져야하는 게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오래간 한 동네에 살았기에, 새로운 친구들이 우리 동네에 오면 나는 동네에 얽힌 나의 추억들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비오면 물이 새던 막걸리집에서 대학 동기들과 취한 기억. 취업이 안 돼 올라갔던 산 위에서 종로의 불빛을 세어보던 일. 버스킹 하는 아저씨를 기다리며 맥주를 마시던 공원. 가끔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추억은 힘이 없다'는 말이 지닌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싸구려 막걸리집을 가지 않고, 일자리를 세어보겠다며 불빛을 바라보는 감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밤에는 버스킹을 듣기보다는 집에서 쉬니까. 그냥 그때의 나는 없는 것이다. 10년간 살던 동네를 떠나며 16살의 나처럼 울지 않았던 것 또한 같은 이유가 아닐까. '헤어짐'이라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 '헤어짐'이라는 상황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고로 벌어졌으면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 30대의 나는 알았고,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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