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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ug 09. 2019

후회가 남는 이유

한다, 하지 않는다

“후회라는 감정에 민감한 편이라서요.” 술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들으니 옛 애인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나도 인생에 후회가 남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시기(20살부터 28살까지)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후회가 남을 것 같으면 무조건 지르는 타입에 가까워서, 차일 것이 명백한데 대쉬했고,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기괴한 음식은 일단 다 쑤셔 넣었고(중국에서 전갈, 몽골에서 양 비계, 프랑스에서 블루치즈 등), 취업하기 전 다양한 필드의 직업을 어떤 식으로든 체험해 보려했다. 친구가 이런 나를 두고 지어준 별명은 “똥된찍먹”. 무엇의 줄임말인지는 웬만하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후회라는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은 보통 경험주의 가치관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 할까 말까할 때는 대부분 하는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중에 ‘그 때 해볼 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빈도가 전보다 높아졌다. “후회라는 감정에 민감한 편이라서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 분에게 “가끔은 후회 그 자체가 결과일 때도 있는데.”라는 말을 덧붙인 건 그런 나의 태도의 변화가 충분히 드러난 일이다.     


나에겐 인생에서 두 가지 크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 첫 번째는 파리 교환학생 동안 불어를 단 네 마디만 배워온 일이다. 1. 파흐동(잠시만요.) 2. 부 파흘래 렁글래(영어 할 줄 아세요?) 3. 쥬 느 쉬 빠 쉬노아즈(저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4. 쀼땽(비속어). 입사하고 싶었던 C사 임원면접에서 임원의 첫 질문, “불어 잘 하겠네요?”에 “아니요, 수업을 영어로 들어서요, 못 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 후회하기도 했지만, 외국에 그렇게 오래 있을 일이 인생에서 거의 없을 줄은 몰랐었는데 놓친 것 같아 참 크게 후회했다. 두 번째는 고작 26살 때 결혼할 남자가 아니라면 앞으로 연애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은 일이다. 입사해보니 희한하게도 우리 회사 공채 선배들은 대부분 결혼을 한 상태였다. 원래 결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나는 입사 이후 갑자기 이십 대 후반이면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혔었다. 26살 쯤 결혼할 남자를 만나 28살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이상한 기준이 생겨서 그냥 생각 없이 연애하기 좋은 시기 몇 년을 날렸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리 회사가 특이하게 다들 빨리 결혼을 한 거였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역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할까 말까할 때는 해야 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만(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연애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다와 하지 않는다는 결국 같은 말이다. 프랑스 교환학생 시기가 새로운 언어 공부의 황금 같은 시기임을 잘 몰랐던 나는, 그때 프랑스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적은 없고 와인이 이렇게 싼 곳이라면 6개월 동안 와인을 미친 듯이 마시고 ‘간다’라고 다짐했을 뿐이다. 와인을 먹고 놀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뿐. 마찬가지로, 이제 26살쯤 됐으니 무조건 결혼할 남자와 연애‘한다’고 다짐했지, 그냥 재미로 하는 연애는 ‘하지 않는다’라고 결심한 적은 없다. 내 인생에 후회를 남긴 핵심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의 문제보다는 ‘잘 몰라서’가 컸던 것이다.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배운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 인지 몰라서. 26살이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몰라서.


'잘 모른다'는 건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인사이트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인생이 시간에 묶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항상 특정 사건을 통과하고 있는데 그 사건이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 지는 현재에선 절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사건으로 인식하지도 못한 일이 미래에서 돌이켜보니 사건일 경우도 있다. 그러니 후회가 두려운 경험주의자들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에서 일단 '한다'를 선호하지만서도, 결국 '한다'를 위해 '하지 않게 된 것'이 후회로 남는다. 이 또한, 시간의 한정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내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분명 또 다시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친구를 불러내 소주를 마시며 후회를 토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선택을 할 때면 책을 많이 읽고 여러 사람에게 물으며 최대한의 정보를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많이 알기 위해서. 그러나 아이큐가 200인 사람도, 직장생활에 대한 수많은 책을 읽은 사람도, 하다 못해 사장도, 퇴근하기 직전 5시 50분에 갑자기 일이 벌어질 지 벌어질 지 않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여전히 모른다. 우리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사망의 시기를 절대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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