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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나 Jul 17. 2024

소상공인 랩소디

잔이 뜨거우면 놓으면 된다.

얼마 전 퇴근을 할 무렵.


그날은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옆 가게도 마침 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발을 헛디뎌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넘어지셨다.


"엄마!!"


할머니의 딸이자, 옆 가게의 주인아주머니가 후다닥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아야야...... 아야야......."


할머니는 고통에 신음하면서 다리를 쩔뚝이며 딸의 차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지며 며칠 전 옆 가게에서 밥을 먹었던 날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하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기서 잠깐 장사하고 다른 걸 하려고 했는데, 벌써 9년이나 흘렀어. 내가 이 산속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장사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젠 그만 두지도 못하고..... 어휴....... 엄마도 주방에서 저렇게 고생만 하고......"


9년?...... 난...... 20년째다.....


물론, 이곳에서 장사만 하며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


일본에 가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필리핀에서 작은 가게를 하기도 했고,

아르바이트 소개 업체인 원츄알바를 친구와 함께 운영하기도 했고,

부동산 전문 신문인 새아침부동산신문사를 차려서 하기도 했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고,

사회복지기관인 시니어클럽을 다니기도 했고,

식품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러시아 주재원으로 나가있기도 했고,

자동차 광고 플랫폼 회사를 차리기도 했고,

책을 몇 권 쓰기도 했고,

기관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고,

밀키트를 개발하기도 했고,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도 했고,

.

.

.

.

우와....... 이것들 중에 제대로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니!!! 참...나란인간.... 대다나다!!


암튼, 결국 돌고... 돌아.... 늘 여기 이 자리에 있다.


벗어났다가 돌아오고, 또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지구보다 더 큰 중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이곳.


삼방동 1099번지.


20년째. 당김을 당하는 중.


며칠 전 2층 가게를 뜯어냈다.



7년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묵혀둔 가게.


어떻게 정리하나 오랫동안 망설였던 것치곤 너무나 간단히 정리가 되어버렸다.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과, 무쇠로 된 거대한 난로까지.


시작하니 금방이었다.


마음을 먹는 것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든 가장 오래 걸린 시간은 마음을 먹기까지의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든 의미가 없는 일은 없겠지만, 한정된 삶을 사는 인간에게, 어떤 일에 대한 우선순위는

늘 필요한 법이다.


작은 모래를 먼저 채우면 그 속에 커다란 돌을 채울 수 없지만, 큰 돌을 먼저 채우면, 그 틈으로 작은 모래를 채울 수 있다.




잔이 뜨거우면 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뜨거운 잔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서 뜨겁다, 뜨겁다 소리를 지른다.  -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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