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인터뷰. 첫 번째 질문 (1/9)
북 테라피 모임 '모여봐요 비밀의 숲'을 함께 한 자살 유가족 분들과 애도 작업을 계속합니다.
8월 24일부터 9월 11일까지 3주간 온라인으로 서로 인터뷰를 해요. 월, 수, 금요일을 세 명이서 하나씩 맡았어요. 해당 요일을 담당한 사람이 질문을 하나 올리면 글을 써서 답하는 방식이에요. 총 아홉개의 질문이 나오겠네요. 내용을 엮어서 마지막에 인쇄물로 만들 계획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 질문과 저의 답변을 기록해요.
오늘의 문장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오늘의 질문
1.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책을 매개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북 테라피 모임을 해요.
2015년 가을에 여동생을 떠나보냈어요. 이후로 우울증과 애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거나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에 참여해왔어요.
요즘 마음은 주로 무기력해요. 코로나 때문에 일이 취소돼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거든요. 때때로 일상에서 즐거움도 느껴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되지만 오늘 갓 구운 잡곡빵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요.
동생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아요. 동생을 잊는 제 모습이 불편해서 일부러 자조 모임을 가져요. 떠올리면 또 그것대로 마음이 불편하지만 계속 마주하고 싶어요. 깊은 감정을 직면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거든요. 영화 <벌새> 시나리오 책을 읽었는데 '작가의 말'이 인상 깊어요. 김보라 감독님이 중학교를 다시 다니는 악몽을 자꾸 꾸셨대요. 그래서 왜 그때를 기억하는지 답을 찾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직면하고 기록하고 가족과 갈등하고 화해하며 시나리오를 쓴 거예요. 촬영이 끝나고 다시 꾼 꿈에서는 중학교 아이들에게 환영받았고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아,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고 느꼈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대화하고 글 쓰면서 무언가 달라지기를 기대해요. 오랜만에 글을 쓰니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드네요. 언젠가 과거의 저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p.s/ 김보라 감독님 글을 같이 읽고 싶어서 아래에 발췌해요.
왜 이것은 기억하고, 저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왜 그 과거의 작은 디테일들을 한 주 내내, 한 달 내내, 그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어둠과 백지상태로 가는가. -도리스 레싱
자주색 교복을 입은 내가 걷고 있다. 내 나이는 20대 후반이지만, 3년 동안 중학교를 다시 다녀야 한다. 바람이 살을 벨 듯이 불어온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며, 끔찍한 기분이 든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언어 속에서 뿌리가 흔들리던 대학원 유학 시절, 나는 종종 중학교를 다시 다니는 꿈을 꿨다. 중학 시절에 봄, 여름, 가을이 없던 것이 아닌데도 꿈속의 계절은 언제나 찬 겨울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면, 중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도리스 레싱의 글처럼, 나는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모든 기억들을 채집하고, 기록했다. 휴대폰 노트와 녹음기에, 일기장에, 메모장에,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영화 <벌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나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내 상태가 타인들에게 읽힐까봐 두려웠다. 사람들을 만나러 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나를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2014년부터 2017년, 집중적으로 명상 수업에, 그룹 상담에, 개인 상담을 받았다. 인도에 몇 차례 갔고, 친구들과 명상 모임 무화과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를 직면했다. 가족들과도 해묵은 모든 갈등까지 송두리째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싸우고 화해했다. 가족들은 내게 이제 그만하자고, 너무 후벼 파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묻고 또 묻고, 싸우고 또 싸웠다. 그 직면의 에너지는 무시무시했다. 나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더 이상은 기회가 없다는 마음으로 나와 가족들을 만났다. 가짜 평화와 거짓을 파헤치고, 숨어 있는 어두움을 부수고 또 부쉈다.
놀랍게도 온전한 미움 끝에 찾아온 것은 사랑이었다. (...)
나는 모든 것이 치유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됐다고, 용서를 구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때로 잔혹하고, 서늘하고, 아프고, 그리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다시 중학교 시절의 꿈을 꿨다. 아이들이 나를 모두 환영해 줬고, 나는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신비하고 상서로운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아,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고 느꼈다.
-<벌새> 시나리오 북, 작가의 말 p.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