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은 Sep 20. 2023

밥 먹을 땐, 밥만 먹자

아이의 식습관을 제대로 잡아주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미디어 없이 밥 먹기였다.


우리 집 식구들은 식구(食口)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각자 밥 먹는 시간들이 다르다.

남편은 거의 90% 이상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두 딸들도 하교 후 학원가는 스케줄이 제각각이니 간식과 밥도 각자의 시간에 맞춰 따로 차려준다.
어떤 날은 저녁밥상만 3,4번을 차릴 때도 허다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다 같이 밥 먹는 시간은 참 귀해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저녁시간이 하루 중 제일 바쁜 엄마여서, 아들의 밥을 차려주고 다시 싱크대 앞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TV는 아이의 좋은 식사 상대가 되었다.

외식을 할 때 역시, 쉴 새 없이 쫑알대는 아이를 조용히 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핸드폰 쥐어주기다. 그것이 반복되니 이젠 아이도 식당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당연하게 엄마핸드폰을 먼저 는다.

모처럼 외식을 편하게 하려면 때론 나도 아이가 찾기도 전에 핸드폰을 건네기도 했다.


무엇가를 보면서 먹으면,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게 아니라,
시청 중인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먹게 된다.
아이는 먹는 행위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니, 포만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탓인지 몰라도 식판에 주는 음식을 무조건 다 비운다.

때때로 배불러서 그만 먹는다며 가져온 식판에 김치 같은, 꼭 다 먹지 않아도 되는 반찬들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알아챘다.

"땡글아, 배부르면 다 안 먹어도 돼."


배가 부르다=그만 먹는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가끔씩 배가 불러도 맛있으면 끝까지 먹게 되는 나나 남편 같은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말이긴 하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급한 불이 아이의 비만이므로, 식판의 음식을 남긴다고 혼내기보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고, 아이에게 주는 양은 내가 조절해 나갔다.


"TV 끄고 식탁에서 밥 먹자."

아직 엄마 말을 잘 들을 나이였기에 아이는 미디어 없이 식탁에서 순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식사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먹는 시간이 줄어드니 당연히 먹는 양도 줄어들었다.
아이치고는 매운 음식도 지나치게 잘 먹는다 생각했는데, 맛에 집중을 해서인지 매운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해지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아이가 양을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족하면 더 달라고 말하고, 배가 부르면 그만 먹겠다고 일어났다.


어쩌면 나는 바쁘고 정신없는 저녁시간, 밥을 차려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TV를 틀어주 나 한숨 돌리는 편안함에 안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아이를 밥상에 홀로 두는 동안 아이는 아동비만의 길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먹을 땐 먹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아동비만뿐만 아닌 모든 비만에서 탈출하는 시작점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동비만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