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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Dec 20. 2023

의지할수록 독립되는 관계

모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살던 사람이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하늘 위에 우주, 우주 위에 내 아이가 있었다.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자리가 제일 없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고, 모두들 육아에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답지에 점조차 못 찍을 정도의 육아실력으로 '엄마가 없는 것보다!' 낫다는 심정이었다.


메르스가 유행하던 당시 며칠간 자체적으로 등교를 중지하고 지내던 중이었다.

막내를 임신한 막달이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내 침대 신세 중이었는데, 불쑥 눈앞에 흰색 그릇이 들이밀어졌다.

거기엔 마치 한라산 성산일출봉 같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말라비틀어진 계란찜이 담겨있었다.

아무것도 입에 못 대고 있던 엄마를 위해 큰 딸이 만들어온 아침상이었다.

나 아니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것 같던 아이가 "음식"이란 것을 해온 것이다.

지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제발 아이들이 제 손으로 냉장고문 열고 우유라도 따라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를 생각한 마음도 놀라웠지만, 계란찜 위에 고춧가루 뿌린 디테일에도 크게 놀랐다.

아이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이 든 첫날이었다.


이제 나도 조금은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내내 무겁게 짓누르던 책임감이 어쩐지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큰딸은 중학생 때, 옐로소사이어티에서 주관한 "아동대통령" 선거에 나가 혼자 유세도 하고, 연설문도 쓰더니 당당히 전국 온라인 투표로 선출이 되었다.

응모한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되어 무언가 도울일이 있을까 싶어 이런저런 조언을 시작하는 나에게,

"모야, 엄마~ 왜 이제 와서?"라고 말해 조금 상처도 받았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투덜거리지만 언제나 할 일을 스스로 잘하는 아이였기에 내가 도울 일도 마땅히 없었다.

아동대통령에 선출이 된 후, <사교육 없는 세상 만들기>에서 의뢰되는 시정연설이 국회에서 있었다.

큰 딸은  "엄마 OO일에 나 여의도 데려다줄 수 있어요? 오는 길에는 혼자 와도 될 것 같아요." 라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의지할 일을 구별해서 알려주곤 했다. 무턱대고 본인의 일정에 맞춰서 엄마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이런 건 엄마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일을 언제나 깜짝 놀랄 만큼 알아서 해내어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큰딸이 포장해 온 오픈샌드위치를 먹으며 글을 쓰고 있다. 기숙사 앞에 있는 유명카페에서 언젠가 내가 맛있다고 한 적이 있는 샌드위치다. 가끔 용돈이 여유가 있는 날이면, 기숙사 퇴소 전에 전화를 걸어"사다 줄까?"하고 묻고, 나는 됐다고 할까 하다가도 이따금 딸의 보살핌이 받고 싶어지면 "그래주면 고맙지~"라고 말한다.


"아이의 커다란 기둥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고, 그 책임감과 무게로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 책임감과 무게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이가 함께 들어주고 있다. 가끔씩은 의도적으로 기대고 싶기도 한 엄마이다.

마음으로 감탄하게 되는 아이 덕분으로, 엄마인 나는 더 훌륭해지고 싶다.


인생이란 것이, 시간이 갈수록 부모의 자식걱정은 반대로 자식들의 부모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엄마에게서 열심히 독립하고 있는 아이가 엄마 걱정을 안 하고 제 갈길을 갈 수 있도록,

엄마 인생 2막을 단단히 꾸려서 제대로 엄마독립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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