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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an 16. 2024

MBTI는 소설이다.

 바야흐로 MBTI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야흐로 혈액형의 시대는 가고 MBTI의 시대가 도래했다. MBTI는 작가인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칼 구스타브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만든 성격유형지표다. MBTI가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작가라는 인간들의 유별난 호기심과 집요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 한 편으로 침대가 과학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작가가 만든 MBTI를 과학이라 여기게 되었으니까.     


‘인간들아, 이거 진짜 실감 나지? 진짜 같지?’ 작가는 이것을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1875년생 캐서린과 1897년생 이사벨도 2024년의 인간들이 이렇게까지 MBTI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나는 MBTI를 논픽션인 척 하지만 결국엔 픽션인 작가의 창작물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을 16가지 성격유형으로 구분 지으려는 시도부터가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조금 억지를 부리자면 이 세상 인간들의 성격유형은 81억 1,883만 5,999개인 것이 더 과학적인 분류 법일 것이다. 게다가 81억 1,883만 5,999개의 성격도 매일 아니 초 단위로 바뀐다.      


최근에 인간들이 ‘MBTI에 따른 수면 자세’ 같은 것까지 창조해 내는 것을 목격하며 한때 이것을 맹신했던 나는 급격히 MBTI라는 허구의 세계를 자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급격히 시들해졌다는 말이다. 동경했던 유명인사가 나와 같은 성격유형이라는 것만으로 내적 친밀감을 넘어 그의 능력치가 나와 동급인 것처럼 여겼던 위인이 말이다.      


거기에는 나를 지탱했던 큰 가치관 하나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탓도 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지만, 어느새 ‘사람은 변하는 파’가 되었다. 이러다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 파’로 다시 돌아설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사람은 변하는 파의 주장을 입증하는 꼴인 셈인 거다.      


AB형으로 태어나 도라이 같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본인은 MBTI로 분류되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더 도라이 같은 인간이 되었다. 물론 나의 혈액형과 MBTI를 싫어하기보단 좋아하는 쪽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류법으로 나의 모든 것이 규정당하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다.     


배우 공유는 MBTI의 틀에 갇히는 게 싫어서 MBTI를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의 발언이 너무나도 멋진 탓에 나도 그러리라 다짐했다. 고로 이미 여기서 한 번 밝힌 바 있지만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MBTI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더불어 타인의 MBTI도 궁금해하지 않기로. 이것 또한 같은 이유다. MBTI 하나로 그에 대해 모든 것을 간파했다는 듯 구는 내가 같잖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안다고? 내가 아는 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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