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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Apr 01. 2024

우당탕탕 3월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다.

매년 3월마다 내년에도 10년 뒤에도 늙지 않을 S를 만나러 간다. 그동안에 우리는 울기보다 웃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 그날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물이 날 만큼 많이 웃었다. 두 번째로 많이 웃은 건 슈퍼 주니어 은혁의 다이빙 짤을 보고 나서다. 웃고 싶을 때마다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야겠다.   

  

3월. 결혼의 종료와 동시에 우당탕탕 어쨌든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결혼의 종료를 알린 뒤에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본인 머릿속에 있는 뜬금없는 생각을 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요즘은 실제 나이에서 17살은 빼야 원래 나이라는 정보를 들었다며 그래서 넌 20대라는 신박한 의견을 진지하게 제시했다. 그래. 엄마 나 지금부터 20대인 걸로.      


무언가를 하기엔 늦은 나이라는 위기의식이 엄마를 지배한 모양이지만 정작 나는 제 나이를 인지하지 않고 산다. 주름이 없다고 까불다가 이번 달부터 급하게 아이크림을 바르기 시작했고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어른같이 느껴지고 그렇다.      


하루의 대부분 눈가가 촉촉한 주제에(하지만 끝내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 어렵다던 YES24에서의 티켓팅을 성공하였다. 이번엔 내가 볼 공연이다. 두 손이 흠뻑 젖은 채로 달달달 떨면서 네이비즘을 째려보며 인터넷 속도 38 Mbps인 8년 묵은 아이폰과 노트북으로 창 5개를 띄워놓고 겨우 한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에는 이혼도 안중에 없었다. 이거 제정신인가? 지금 공연 보러 서울행 SRT를 결제하는 정신 줄이 있다는 게. 하지만 기분이 좋아질 만한 것이라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먼지 같은 기회라도 붙들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지금 내가 찔찔 울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나는 티켓팅 성공의 기쁨에 취해 실실 웃고 있다.      


웃음은 상황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고 사람이라는 건 곧 죽을 것 같아도 한 번 웃으면 또 살아진다. 웃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틈은 벌어진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덕분에 침울과 기쁨 사이에서 우당탕탕했다. 이번 달엔 책을 4권밖에 읽지 못했고 고스란히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을 반복했다. 영어공부는 3번째 책에서 멈춰 섰고 매 끼니 악착같이 잘 챙겨 먹었는데도 앞자리가 바뀌었다. 위기감을 느끼는 가운데 묘하게 기쁘다. 살 빼기에는 맘고생이 최고다. 다이어터들에게 이혼을 추천할 수도 없고 이것 참.      


끝까지 붙들고 있던 웨딩 사진 파일을 영구 삭제하고 멈춰있던 살림살이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워낙 물건이 없어서 금방 끝날 것 같다. 때마침 모든 가전이 수명을 다한 시점이라 새 가전을 사기에도 시기적절하구나. 타이밍 기가 막히네. 아. 은혁짤 한 번 더 보고 와야겠다.     


질식할 것 같은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고 벌써 4월이다.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 여겼지만, 이혼은 그저 결혼의 실패일 뿐이었다. 종료 대신 실패라 말하는 이유는 그간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실패했다. 그러므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눈부신 4월이라니.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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