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운운했던 게 생각나서 우스웠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 5월이라는 걸 알아채듯 과일은 내게 먹이라기보다는 꽃 같은 존재라 복숭아, 포도, 참외, 수박을 보면 먹고 싶다기보다 여름을 실감하게 된다.
여느 때처럼 과일가게에 진열된 딸기를 보며 아직은 겨울이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불현듯 딸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의 딸기를 놓치면 다음의 딸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다음의 겨울을 기다리기가 싫어서 기다림에 질려서 나는 먹고 싶지도 않은 딸기를 한 보따리 사서 일주일 내도록 딸기를 먹었다.
살면서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딸기를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었다. 내 경험치는 이다지도 미약하다. 앞으로는 딸기를 생각하면 꽉 막힌 마음을 붙들고 과일가게 앞에 서 있던 내가, 새빨간 딸기를 꾸역꾸역 먹었던 내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4월까진 추운 날이 섞여든다는 걸 알지만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여름이 오기 직전까지 구스다운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일찌감치 소파에 깔아 둔 전기장판을 치웠고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꺼내놓은 여름옷을 입을 때 즈음에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낯선 동네를 산책하고 있을 그때의 나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만큼이나 가뿐해질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완만한 경사를 걷고 있는 것 같다. 평지에 다다를 것인지 급경사가 나타날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지 알 수 없어 조금씩 지치고 시간이 더디게 간다. 하루에 몇 번이고 마음을 추스른다. 괜찮다. 괜찮다. 이 기다림의 시간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끝난다.
내가 돌진하듯 서류를 준비하고 부동산을 다녀오고 집을 알아보는 동안에 그는 그가 말한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번복했다. 터질 것 같은 맘을 진정시키고 다시 합의점을 맞춰보자는 문자에 일본 출장 중이시란 답장이 날아온다. 그렇게 또 나는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단단하게 유지하던 일상의 루틴이 흔들렸다. 더 봐야 할 바닥이 남아있다는 아득한 공포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숨통이 조여 온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게 맞긴 맞는 거구나.
사랑 운운했던 게 생각나서 우스웠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지금은 맞고 그때가 틀렸다면 지금을 믿고 살 수밖에 없을까. 아니면 지금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살아야 할까.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것 아닐까. 아니다.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 그럼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까. 내가 다시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그냥 살아야 한다. 저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밖으로 나갔다. 고작 이틀 산책하지 않았을 뿐인데 벚꽃이 꽤 많이 폈고 목련 꽃잎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다행히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구나. 그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