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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Apr 15. 2024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모든 이별은 급작스레 일어난다. 

 집을 보러 온 이들은 60대 부부로 보였다. 남자의 손에 들여있는 지역의 유명 빵집 종이가방을 보자 이 집이 관광지처럼 느껴졌다. 식탁에 하릴없이 앉아 오늘의 운세 따위를 읽는 나는 이 집과는 무관한 사람 같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인도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마땅히 이 집의 주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호기심의 눈빛을 숨기지 않던 남자에 반해 여자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한 듯 무심한 얼굴로 집 안 곳곳을 살폈다. 신혼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좁고 낡은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콧속으로 파고들던 지극히 개인적인 냄새와 믿을 수 없을 만큼 너저븐하게 펼쳐진 살림살이들. 피곤함과 당혹스러움이 뒤범벅된 채로 아이를 달래고 있던 여자의 표정이.     

 

그에 반해 이 집은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늘여놓은 살림살이가 없다. 모든 것이 원래 그 자리에서 태어난 것처럼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들을 숨 막히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로 집을 보러 온 이들은 조그만 남자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 짙은 카키 컬러의 바버 왁스 재킷을 걸친 남자는 집 안에 들어서고 나가는 순간까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 보러 다닐 때의 주의사항이라고는 체크해 보지 않은 듯한 어딘가 어수룩한 면모를 가진 인상이었지만 일부러 그것을 염두 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들린 중개인은 내게 알은체를 한다.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8년 전에 그녀를 통해 이 집을 계약했었다. 그에게 자신의 아들이 사장님처럼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때 속으로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군요’라고 비아냥거렸었지. 순해 보인다는 나의 평가를 그의 아내가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집을 보러 오는 여자들은 모두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젊은 여자 역시 집안 여기저기를 꼼꼼히 살피면서 장점보다는 단점에 대해 지적했다. 똑똑하다. 새시 교체가 안된 게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이 맞다.      


중개인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어쩜 이렇게 8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집이 깨끗하냐고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이 난리 통에 그는 술 냄새로 찌든 방문을 열고 부스스한 차림 그대로 밖을 나가버린다. 그들이 들이닥치기 2시간 전 부동산에서 올 거라고 연락을 해두었지만 나는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이.      


이 좋은 집을 두고 어딜 갈 생각이냐는 중개인의 말에 그저 말없이 웃었다. 상어 인형이 침대 정중앙에 베개를 베고 누워있는 안방과 홀아비 냄새로 찌든 그 방을 보면 모르진 않았을 거다. 내가 왜 이 집을 두고 떠나려는지.      


이 집은 생애 6번째 집이었다. 그간의 온갖 모멸감을 견뎌내고 버틴 건 이 집에서 살기 위해서였다고 여겼을 만큼 내 맘으로 풍덩 들어온 나에게만은 완벽한 나의 집. 움켜쥐고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다. 꿈을 꾸면 가장 가난한 시절의 그 집으로 돌아갔고 잠에서 깨면 이 집에 있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 이런 상황이 오리란 걸 알고 있었기 그토록 불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움켜쥐려 했던 건 그가 아니라 이 집이었다.    

  

모든 이별은 급작스레 일어난다. 움켜쥔 두 주먹을 살짝 놓았을 뿐인데 그 찰나의 순간 이 집은 내 손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이곳에선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의 애정이 무색할 만큼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위해 청소하던 집을 이젠 남의 집이 되게 하려고 청소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여자 세 명이 방문했다. 그들은 집주인 센스가 장난 아니라고 나를 치켜세웠고 그들의 칭찬 폭격을 듣는 내내 나는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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