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세상으로 도망친다.
몸이 재빠르지 못해서 지하철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어? 어어어 하다가 앉지 못하고 주로 서서 간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칸에서 내린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앞질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뒤돌아보면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어째서 나는 이 모양일까. 이런 일에 굳이 패배감까지 느끼는 게 제일 어이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여자애 4명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고만고만한 실력이었는데 꼴찌로 달리는 아이는 결승점을 통과하기도 전에 뛰기를 포기하고 터덜터덜 걸었다. 나는 어땠나. 그때도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꼴찌로 달리는 아이였지만 걷지는 않았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을 가졌다기보다는 포기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소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용기가 결여된 인간이고 앞서나가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지 못해서 매번 조그만 일에도 자괴감을 느낀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야망가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하면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가슴속에 근육질 여성이 되고픈 야망을 품고 죽을 것 같이 운동을 하는데 선생님은 굉장히 차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내가 알기론 내가 차분한 적은 없다. 야망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살면서 차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건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맘은 언제나 왔다 갔다 이리저리 회오리쳐서 모든 걸 헤집어 놓아 탈진할 지경인데 말이다.
그런대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면 다음 날은 어김없이 견디기 힘든 하루를 보낸다. 요즘 나의 마음은 이게 공식이라도 되는 듯이 충실하게 이것을 수행 중이다. 그만, 그만하라고 제발. 죽을 때까지 이렇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다.
며칠 전에 H님은 내 첫인상이 몹시 차가워서 자신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 예상했는데 몇 번의 짧은 대화 끝에 본인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더 동그래졌었다. 여기서 놀라웠던 점은 최대한 상냥함을 유지하려 내가 평소보다 많이 웃었다는 것이지만.
인간은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4명의 여자애들처럼 다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한 것일지도.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간에 모두가 탈진할 것 같은 마음을 붙들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숨기고 버티고 있다고.
산책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지 않았는데 이사 오고 나서 딱 한 번의 산책을 했다. 그때의 우울감이 무서워서 아직도 산책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이렇게 된 김에 유산소를 접고 근력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산책의 시절이 끝났고 쇠질의 시절이 도래되었다. 참, 거창하기도 하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변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여서 피할 수 있는 일은 피한다. 세상 밖에 있는 것이 괴로워지면 음악을 들으며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어디서든 책을 읽는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 속으로, 내가 선택한 세상으로 도망친다.
나는 변하지 않았고 대응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일. 포기하고 회피하고 차단한다. 대체로 우울함의 한가운데에 나를 던져 넣고 극복해야 한다고 우기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우울의 낌새가 느껴지면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좋아하는 상황에 나를 던져 넣는다. 내 방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이것이 지금의 내게는 적합하고 필요한 방식이란 생각을 한다.
K는 우울할 때마다 떡볶이를 사 먹고 달리지 않았던 P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가상세계로 도망친다. K가 떡볶이를 좋아해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P가 웃기고 짠했고 내가 가상세계를 발견해서 기특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우리가 어떻게든 살려고 해서 정답 같은 건 진짜 없어서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