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잠에서 깼을 때 꿈속에서의 집이 ‘빨간 벽돌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곳으로 옮겨온 뒤론 그 집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당의 절반을 차지했던 화단의 흙은 애써 외면해야 할 만큼 더러웠고 그곳의 대추나무에서 열린 대추는 작고 달았다. 6년 남짓을 살았던 그곳이 꿈속의 집으로 자리 잡은 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J와 그의 가족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캐리어에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쑤셔 넣는데도 아직 넣어야 할 짐이 많아 조급하고 안달이 난 맘으로 잠에서 깼다. 나의 두려움은 어디로 옮겨 간 걸까.
이곳은 빨간 벽돌집과 J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남서쪽에는 그 시절 다녔던 고등학교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J와 살았던 동네가 보인다. 이 집을 처음 보았을 때 애써 외면해야 할 만큼 외면하고 살았던 그 시절과 벗어나야만 했던 동네를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빨간 벽돌집을 그만 놓아주고 이번에는 J와 살았던 동네를 그 시절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하고 살아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하는 무척이나 웅장한 생각을 했었다.
익숙함에는 강하다. 그것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 부러 고등학교를 매일 바라봤다.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학교 건물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아픔보다는 그땐 왜 그렇게 잠이 많았을까. 잠이 없었다면 좀 더 공부를 잘했으려나. 그러면 서울을 갈 수 있었을까. 그럼 뭐가 달라졌을까. 같은 일반적인 망상이 자리를 잡았다.
집에 있는 동안 TV는 보지 않고 소파에 누워있는 일도 드물어서 대부분 주방 테이블에 앉아있거나 침실에 있어서 J와 살았던 동네를 온종일 바라보게 된다. 그곳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 생각하게 되지만 평소엔 J를 빈번하게 떠올리진 않는다. 끊어내기를 못하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끊어내기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J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사람을 떠올리며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는지 이불킥을 날리고 싶은 당혹감이 느껴진다. ‘운이 좋았지’를 들으며 나 자신보다 더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큰 자산이라는 생각까지 했고 그 가슴 아림이 좋아서 사춘기 소녀처럼 몇 번이고 그 곡을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사랑을 포기한 건 아니다. 여전히 사랑을 좋아한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에 가깝다. 단지 남자와 하는 사랑을 이젠 원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하고 여전하지 않다. 고양이를 보면 꼭 한 마디씩 말을 걸고 한적하고 고요한 곳이라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꼼짝없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북동과 남서를 그런 식으로 인지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닳아서 옅어지고 사라지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바라보는 정도의 노력을 했고 애쓰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마을버스를 타 보았다. 마을버스는 하나의 소도시 같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 내를 이리저리 돌았다. 내 기준에선 번잡하고 요란하고 우울한, 일반적인 기준에선 편의시설이 잘 잘 갖추어진 단지를 지나 한적한 내 집 앞에 들어섰을 때 편안함과 동시에 소외감을 느꼈다.
우연히 꼭 맞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된 거라고 여겼지만 본능적 감각이 이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꼭 맞는 자리는 언제나 소외감이 뒤따른다. 한적한 이곳이 내 집이구나 싶은 생각에 절로 광대가 솟구치다가도 고요한 밤에 멀뚱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이곳에 덩그러니 누워있게 된 건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원하고, 원하지 않는다. 그러고서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를 바라며 괴로워한다.
이곳이 정착지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이번의 두려움일까. 아니면 이곳이 정착지가 될 것만 같아서 두려운 걸까. 하지만 괴로운 것치곤 잘 먹어서 세 달 만에 3kg가 쪘다. 이대로 계속 먹다간 6kg도 금방 찔 것 같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했던 거친 폭풍우는 지나갔다. 다가온 비바람과 눈보라는 노랫말처럼 봄바람 같았고 가끔은, 아니 실은 자주 겨울바람같이 매서워서 이렇게 찔끔거리기도 한다. 괜찮다. 나는 살이 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