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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밥 넣기 어렵다.

재취업 한 달 차

by 윤비

어제는 지하철에서 이 세상 냄새가 아닌 것 같은 타인의 땀 냄새를 맡고 혼절할 뻔했다. 똥 냄새는 향기로운 것이었다. 안 씻은 개 발바닥 냄새를 모르는 사람은 있겠지만 한 번만 맡은 사람은 없을 거다. 개 발바닥에서는 향수로 만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꼬순내가 난다. 그러나 안 씻은 인간의 발바닥 냄새는 어떠한가. 역시 인간을 개보단 사랑할 순 없을 것 같다. 회사가 강남에 있어서 애초에 차로 출퇴근하는 걸 포기했었는데 자차로 출퇴근해 볼 용기를 주는 땀 냄새였다.


부산엔 괴기한 도로가 많긴 하지만, 강남의 좁은 일방통행로보다는 운전하기 쉬운 것 같다. 업무상 외근이 많은데 그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같은 길을 몇 번씩 뱅뱅 도느라 나는 내가 귀신에 홀린 줄 알았다. 외근 나갈 때마다 두려워서 가슴이 콩닥 뛰었는데 지금은 그 좁디좁은 골목에 주차하는 게 겨우 가능해졌다.


부산 운전경력 20년 차가 보는 이곳의 차주들은 놀랄 만큼 클랙슨을 누르지 않는다. 부산 같으면 10번을 눌렀을 일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좀 신기하긴 하다. 몇 년 전, 클랙슨이 고장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차창을 내리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며 지하주차장 입구에 떡하니 서 있는 사람을 향해 입으로 빵빵 소리를 내질렀었다.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난다.


회사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다. 첫 번째, 몇몇 사람들이 사무실 안에서 담배를 핀다.(그것도 전담이 아니다.) 담배 냄새를 많이 맡은 날은 같이 담배 핀 상태가 된다. 어질어질하고 목이 칼칼해진다. 건강 때문에 술도 끊은 내가 담배에 절어지다니. 이게 2025년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천장에서 물이 샌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은 감전사를 걱정한다. 지하창고는 물이 고여 있는 수준이라 혹시나 내가 사무실로 올라오지 않으면 감전사당한 것이니 까먹지 말고 내려와서 나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근데, 아무도 안 와줄 것 같다.


세 번째, 와이파이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사무실 전화기가 없다. 피 같은 데이터를 쓰고 개인번호가 모든 거래처에 공개되고 있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망한 현실 앞에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SNS에 떠도는 글귀 하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공주다.’


하루가 몹시 고되고 바빠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고꾸라질 겨를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힘든 것보단 돈 벌면서 힘든 게 낫다고 지금의 힘듦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려 하는데 말처럼 쉽진 않고 슬픔이 먼저 찾아와서 언제나 웃프다. 덕분에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모든 감정에 슬픔이 함께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도 꼭 끼려고 한다. 예전보다 밝아졌음에도 그래서 조금 슬퍼 보인다. 차가워 보인다는 말만 줄곧 들었던 나로서는 다소 낯선 얼굴인데 J가 보기엔 감정 없는 로봇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어서 속을 모르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이런 말은 제발 전달하지 마.) 사람이 감정이 없을 리가 있나. 회사에선 속내를 드러낼 생각이 없고 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지.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무능력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권력이고 능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딜 가도 꼭 한 명씩은 있는 것 같다.


로봇 같아 보이는 나는 외부 자극에 예민하고 쓸데없이 관찰력이 좋아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은 되도록 흐린 눈을 한다. 예전에는 전부 정통으로 맞고 극복하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슬프기 때문에 그럴 힘이 없다. 한마디로 입 닥치고 다니고 있다.


출퇴근 때도 눈을 감고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야 조금이라도 그 시간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출 수가 있다. 다만, 코는 막을 수 없어서 어제와 같은 냄새 공격은 피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나를 끔찍하게 아끼는 모양으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덜 주려고 한다. 하필이면 회사가 서울에서 가장 싫어하는 강남에 있어서 보기 싫었던 꼴을 많이 보지만 동시에 더러운 골목 귀퉁이에 핀 수국을 보고 고층 건물 사이에 걸쳐진 구름도 같이 올려다본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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