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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Vark Oct 27. 2021

일을 잘하는 사람 VS 일이 되게 하는 사람



남편과 나는 제법 오랫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무렵 서른을 앞둔 남편은 준비하던 시험을 계속해야 하나 취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다. 백수 아닌 백수였던 남편의 절대적인 시간 투자가 연애 초반에 있었기에 그 후 우리는 3년 정도의 장거리 연애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연애 초 나는 의류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백화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앞에서 기다리는 남편이 있음에도 일을 마무리하다 보면 한 시간씩 늦기 일쑤였다. 그 시절 남편의 24시간은 고맙게도 나에게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일을 할 때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직해 패션 MD로 일할 때에도 사적인 카톡이나 전화를 업무시간에 하지 않을 만큼 업무를 중심으로 생활했다. 업무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가는 동료들 혹은 차장님 몰래 창을 띄어 놓고 주식을 하거나 개인적 쇼핑을 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그들의 마음은 회사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남편과 데이트를 할 수도 없고 딱히 만날 지인도 없는 서울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야근을 하거나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 업무를 보았다. 퇴근길에 남편이 전화를 할 때면 보통 나는 사무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남편은 참 신기하다고 했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야근을 알아서 하냐고. 하지만 나는 야근을 하는 내가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복 디자이너 시절부터 야근은 기본 옵션이었고 계절별로 품평회 준비를 하다 보면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갈아 넣어서라도 결과가 좋으면 짜릿했다. 나는 일을 일로 생각하고 나와 구분 짓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가거나 옷이며 신발을 장바구니에 넣은 동료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반면 나는 백수가 되었다.


부당한 지침이 내려와도 아래로 전달만 하면 되는데 나는 무엇보다 그것이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매장에 상품이 입고가 되면 창고에 정리를 하는데 아무리 손이 빠른 직원이라도 평균의 2배는 할 수 없다. 일을 하다 보면 평균적인 업무량에 대한 기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어떤 매니저들은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매니저가 되기 전엔 그 부당함을 나의 시간으로 매웠지만 내가 매니저가 된 뒤엔 그 부당함을 직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직원들을 퇴근시킨 후 내 시간을 넣어 마무리했다.


본사에서 MD로 일할 때엔 매장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MD들은 엑셀 파일을 대충 돌려 매장에 던져주고 상품 이동을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도 매장의 업무가 있는데 그런 계산 따윈 없다. 매장에서 이건 불가능하다고 하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매장것들, 하라고 하면 할 것이지." 하며 옆에 있는 다른 MD에게 동조를 구하는 식이다. 순간 옆에서 듣는 매장 출신인 나는 흠짓 놀랬다. 엑셀 파일이라도 매장에서 일하기 쉽게 정리해서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진도 없이 번호만 가지고 물건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일임을 그 일을 해 본 적 없는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본인이 내린 업무를 본인에게 완성하라면 완성할  있을까? 적어도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업무가 기획되고 분배되어야 한다는 그런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회사 생활은 지옥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회사의 목표는 언제나 실현 불가능할 만큼 높았고 내가 일을 일로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려면 나머지는 밑으로 밀어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업무에 구멍이 나질 않을 정도로 일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직위의 힘으로 일을 밀어내는 사람이 살아남는 구조이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의 꿈인 유명 패션 브랜드의 지사장이  수 있은 인재가 아님을 본사에서 일하는 동안 직감했다. 회사의 입장에선 본인의 유능함으로 일을 완수를 하든 밑에 사람을 쥐고 짜든 일이 되기만 하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혼자 하는 것에 강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리포트를 기획하거나 토익점수를 만드는 일과 같이 타인에게 부당함을 강요하지 않는 일말이다. 돌아보면 늘 학창 시절부터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지만 일을 잘 나누기보다 독박을 쓰는 편에 가까웠다. 혹은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 성격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어학연수 시절 프렛(영국의 스타벅스)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나는 매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키친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한 곳이다. 나는 아마도 일을 잘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해도 본질적으로 회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회사를 대신해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다.


사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화사의 화력을 위한 불소시개로 쓰여 번아웃되기 딱 좋은 사람들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면 그 에너지를 좀 남겨 오랫동안 빛을 내라고 전해주고 싶다. 의식적으로 일과 나를 구분하고 적당히 일을 밀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어렵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한다. 결국 오래 살아남는 자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곳이 바로 회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엔 총량이 있다. 당신이 옆의 동료보다 2배 더 열정적으로 일하는 동안 당신의 기대 근로기간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강약 조절은 음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힘을 빼고 표류하듯 유영을 하는 기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회사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회사의 생존을 위한 고효율의 연료가 되어 불꽃같은 빛을 내며 제일 먼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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