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7주 5일차.
지구의 중력이 아래가 아니라 나의 정면을 향하고 있다. 뱃속에 커다란 자석이 있고 그 자석은 오로지 정면을 향해서만 돌진한다.
무거운 몸을 끌고 헬스를 나간다. 나에게 의지하는 생명이 둘이다. 건강이 나빠지면 자식들도 영향을 받는다.
몸이 무거우니 등 운동을 중점적으로 한다. 시티드로우 25kg 3세트 15회, 푸쉬업 3세트 12회, 레그프레스 3세트 15회씩 완성했다.
어려서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다. 척추측만과 허리 디스크를 고질병처럼 앓았다. 그래서 온갖 운동에 더 집착했다. 근육이 부드러워지는 스트레칭 요가 필라테스부터 자세가 곧아지는 자이로토닉까지 안해본 게 없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통증이 없어졌다고 하긴 어렵지만, 조금 덜해졌다. 허리가 아파올 때 내가 내 몸을 갖고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왜 온전해야만 할까? 왜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행복한 부부처럼 살아야만 하는걸까? 그렇게 살수만 있다면 물론 엄청난 행운이겠다. 하지만 부부 관계도 선천적인 체형처럼 불완전할 수 있다. 마치 태어날때부터 약한 내 척추처럼. 아귀와 케미가 맞지 않는 두 사람이 뭐에 씌어서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낳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약하디 약한 서로의 존재를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남편은 요즘 번아웃과 슬럼프를 겪고 있다. 아홉수라고 하나? 직장에서의 상황이 무척 혼란스럽단다. 프로젝트를 위해 그룹 내에서 다른 조직으로 이직을 했는데 그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고, 다른 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어 5월 안에 또 조직을 옮겨야 한다. 멘탈이 흔들려서인지 건강 상태도 좋지 않다. 계속 몸살기운이 있다며 쉬는 날엔 침대와 한몸이 되어 누워 있다. 그의 무기력함이 집안 곳곳에서 짙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집안일이나 육아 등 자기가 맡은 바를 게을리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어딘가 바람 빠진 풍선 같달까.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왜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매주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운동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 안다. 9 to 6~7 근무하는 직장인의 루틴에 운동을 끼워넣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치만 차라리 저녁을 회사에서 먹고 회사 헬스장에서 조금의 유산소나 근력운동이라도 하고 온다면 좋겠다. 아침에는 내가 아이 유치원 등원을 모두 도맡고 있다.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일어나 회사에서 운동하고, 씻고 출근하면 좋겠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루틴이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엔 다소 몸이 (어쩌면 임산부인 나보다) 무거운 사람이다. 상대방에게 이런 저런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아침에 눈 뜨고 출근해서 숨쉬면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요즘 좀 힘들어서 그래. 무기력하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그래. 옆에서 봐도 그렇게 보여. 어떻게 힘든건지 말해줄 수 있어?"
심리학에선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이 어떻게 힘든지, 어떤 종류의 괴로움인지, 그래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깊은 대화법이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독한 아홉수와 무기력증, 번아웃을 견디는 남편에게 더이상 운동이라던지 건강한 식단을 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의 마음이 조금 나아지기를 옆에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분은 날씨와 같아서 어제는 비바람이 마구 불어대던게 다음날이면 따뜻하고 포근한 봄날씨가 성큼 다가와 있다. 아이는 씩씩하게 크고 있고 뱃속의 아이도 무탈하게 자라는 중이다. 나에겐 매일의 해야 할 창작물들과 해치워야 하는 노동들이 있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제 나의 삶은 아이가 없거나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 인생으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니 이 안에서 조금씩 움직여가며 안식과 평안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불편함 속의 최선의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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