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울고 있어도 자기 밥먹는게 우선인 남편을

비난할 수 있을까

by 스몰빅토크

새벽 2시. 아이의 이마가 뜨겁다. 체온계: 37.7도.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해열제 복용 시간을 역산하고, 응급실 기준 체온을 검색하고, 내일 소아과 예약 가능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 누운 남편을 깨운다. “일어나, 아이 열 나.”


남편은 체온계를 확인한다. “38도 안넘네. 해열제 먹이고 지켜보자.” 그리고 다시 눕는다.

나는 분노한다. ‘애가 아파도 자기 잠이 더 중요한 거야?’


주말 아침. 아이가 운다. 밥을 달라고 운다.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자기 밥을 먹고 있다. “아이 먼저 좀 먹여.” 남편: “나 이거 먹고.” 자기 밥을 계속 먹는다.


외출 10분 전. 나는 아이 옷을 입히고 기저귀 가방을 싸고 간식을 챙기고 신발을 꺼내놓는다. 남편은 서류 작성 일을 하고 있다. “아직도 준비 안 해?” “이것만 끝내고.”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급해도 자기 우선순위를 먼저 처리하는 배우자.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도 불안한 나. 한쪽은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이야”라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그랬다. 매일, 수백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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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본적인 차이를 깨닫게 된 건 성격과 기질 검사 결과지를 받고 나서다.

우리는 세상을 감지하는 센서가 다르다.


TCI에는 위험회피(Harm Avoidance)라는 척도가 있다. 위험 신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기질 지표다. 타고나는 것에 가깝다.


나: 백분위 98. 남편: 백분위 5.

100명을 세우면, 나보다 불안한 사람은 2명뿐이고, 남편보다 태평한 사람도 5명뿐이다. 같은 방, 같은 시간, 같은 사건 앞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체감 온도가 이토록 달랐다.


“두 사람의 기질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다. 세상을 감지하는 센서 자체가 다른 것이다.”


센서가 다르면, 같은 상황에서 몸이 보내는 신호가 다르다. 아이가 37.7도일 때 내 몸은 전투 모드에 돌입한다. 열성경련, 뇌수막염, 패혈증 — 합리적으로는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내 시스템은 확률이 아니라 가능성에 반응한다. 0.1%라도 가능하면, 100%의 긴장으로 대응한다.


남편의 몸은 이 상황에서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 37.7도는 남편의 센서가 ‘위험’으로 분류하는 온도가 아니다. 해열제를 먹였으니 다음 단계는 경과 관찰이다. 논리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나에게 그 ’다시 눕는’ 행동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아이가 3살이 될 동안 이 장면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결론을 굳혀왔다. 나는 “남편은 자기중심적”이라고, 남편은 “아내는 너무 강박적이다”라고.


그런데 검사 결과를 놓고 보니,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다.


두 개의 운영 체제

내 결과지는 이랬다. 불안(ANX) 75T. 부정적 정서성(NEGE) 77T. 사회적 불편감(SOD) 82T. 인내력(PS) 백분위 100. 위험회피(HA) 백분위 98.


숫자로 보니 새삼 선명했다. 나는 세상이 무섭다. 사람이 무섭고, 평가가 무섭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 무섭다. 그 무서움 위에서 매일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원고를 쓰고, 장을 보고, 운동을 하고,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짠다.


인내력 백분위 100. 이건 다르게 말하면 이런 뜻이다. 불안이 아무리 높아도 멈추지 않는다. 포기라는 옵션이 내 시스템에 없다. 불안이 엔진이 되고 인내력이 연료가 되어, 나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남편의 결과지는 정반대의 풍경이었다. 불안(ANX) 38T. 우울(DEP) 33T. 자극추구(NS) 백분위 92. 위험회피(HA) 백분위 5. 인내력(PS) 백분위 96. 자율성(SD) 백분위 96.


불안하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화도 잘 나지 않는다. 대신 자극을 추구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 자기 계획대로 세상을 운영한다.


남편은 기계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편도 힘들다. 다만 남편의 힘듦은 남편의 운영 체제 안에서 자동 처리된다. 외부로 출력되지 않는다. 나처럼 새벽 3시에 누워서 “나 지금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는 일이 없다. 남편에게 힘듦이란, 조용히 혼자 해결하고 다음 날 아침에 평소처럼 출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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