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대체로 이런 흐름이다. 나는 의사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상을 끝까지 본다. 릴스 하나가 끝나면 알고리즘은 다음 의사 와이프의 일상을 밀어 넣는다. 그러면 또 본다. 스크롤을 멈추지 못한다.
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순간,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SNS의 알고리즘은 단순하다. 내가 봤던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준다. 내가 의사 와이프 브이로그를 3초 이상 보는 순간, 알고리즘은 나를 잠재 고객으로 분류한다. ‘이 사람은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에 반응한다.’ 그래서 다음번에도, 그다음번에도 비슷한 영상이 올라온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일이 벌어진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묘한 답답함이 올라온다. 배가 불러오는 임산부의 몸으로 소파에 기대앉아 그 영상을 볼 때, 나는 분명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멈추지 못한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1954년에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을 발표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한다는 이론이다.
비교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향비교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고, 상향비교는 나보다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SNS, 특히 인스타그램은 상향비교의 최적 플랫폼이다. 2024년 인스타그램 사용자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가 주 1회 이상 상향비교를 경험하고, 그중 55%가 자존감 하락을 보고했다.
의사 와이프 콘텐츠는 이 상향비교의 정점에 있다. 단순한 부자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남편 + 경제적 풍요 + 우아한 일상’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져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사회적 신뢰가 거기에 얹혀지니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사람은 배우자도 잘 골랐고, 삶도 잘 설계했구나”라는 복합적인 부러움이 생긴다. 나는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불편했다.
의사는 과연 부자일까?
2022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원의의 평균 연봉은 약 2억 9천만 원이다. 봉직의(페이닥터)는 약 1억 8천만 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확실히 고소득자다. 대한민국 직장인 평균 연봉이 4천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5~7배에 달하는 수입이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 숨겨진 것들이 있다.
개원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의료장비, 인테리어, 임대보증금, 초기 운영비. 전문가들은 내과 기준으로 최소 5억에서 10억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 돈을 대출로 충당한다. 연봉이 3억이어도,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 직원 급여, 임대료, 의료장비 리스비를 제하면 실질적으로 손에 남는 돈은 상당히 줄어든다.
더 충격적인 숫자가 있다. 직업별 개인회생 신청 비율에서, 의사는 18.1%로 회사 대표(19.7%) 다음으로 높다. 의사 5명 중 1명 가까이가 개인회생을 신청한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이건 뭘 의미하냐면, 병원 문을 닫는 순간 빚쟁이로 전락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폐업을 하고 싶어도 빚을 갚을 길이 없으니 병원을 접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원금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이자만 내는 개원의가 적지 않다.
SNS에서 에르메스를 들고 호캉스를 찍는 의사 와이프 뒤에, 남편의 대출 잔액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본인도 정확히 모를 수 있다. 개원의의 회계는 복잡하다. 매출이 많아 보여도 순이익은 다른 이야기다.
물론 잘 버는 의사도 수없이 많다. 성형외과나 피부과처럼 비급여 진료 비율이 높은 과는 수익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SNS에서 보여주는 의사의 삶은 잘 되는 의사, 그중에서도 잘 사는 의사, 그중에서도 콘텐츠를 올리는 의사의 아내가 보여주는 단면이다.
통계학에서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 부른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은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 자국만 분석해서 장갑을 보강하려 했다. 하지만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지 못한 비행기를 봐야 합니다.” 총탄이 없는 부위가 오히려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돌아온 비행기만 보면 진실을 놓친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올리는 의사 와이프만 보면 진실을 놓친다. 개원 실패로 이혼한 의사 부부, 빚에 쫓기며 당직을 뛰는 봉직의의 아내, 남편의 과로로 혼자 육아하며 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은 릴스를 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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