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라떼를 두 번 말했는데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by 스몰빅토크

카페에서의 일이다. 나는 아이와 있었고, 남편에게 주문을 부탁했다. 나는 아이스 라떼를 시켜달라고 했다. 두 번이나 말했다. “디카페인 아이스 라떼. 라떼야, 라떼.” 남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5분 뒤 내 앞에 놓인 건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이거 아메리카노잖아.” “어? 아메리카노 아니었어?”

같이 산게 도합 7년째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카페에 간 횟수만 해도 200번은 훌쩍 넘을텐데.

난 단 한번도 아메리카노를 마신 적이 없다. 그냥 우유를 마시면 마셨지. 그래도 그는 모른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것 같다.


한번뿐이 아니다.


지난주엔 식당에서 36개월 아이가 나가자고 보채기 시작해서 먼저 나갔다. 나가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 가방 좀 챙겨와.”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고개도 끄덕였고, 대답을 했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계산을 마치고 유유히 빈손으로 걸어 나왔다. 가방은 의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남편이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 나는 샤워를 하거나, 잠깐 볼일을 보러 나간다. 10분. 길어야 20분이다. 그 사이 아이가 유리문에 머리를 박는다. 뛰다가 넘어져 입술이 터진다. 들고 있던 책에 귀 뒤를 긁어 상처가 난다. 남편은 바로 옆에 있었다. 같은 공간에, 같은 방에. 그런데 못 봤다고 한다. 순식간의 사고라고 말한다. 못나게 아이 탓을 한다.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스크린샷 2026-03-28 오후 8.35.27.png

처음엔 화가 났다. 그다음엔 의심이 들었다.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내 말을 하찮게 여기는 건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 수만 가지 해석이 머릿속을 돌았다. 전부 다 나쁜 방향이었다.


엄마들을 만나면 남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내가 이 세 가지 에피소드를 꺼내자마자, 카페 테이블이 술렁였다.


“어머 우리 남편도 똑같아. 분리수거 나가면서 현관 앞에 놓은 택배 갖다 달라고 했는데, 분리수거만 하고 들어왔어.”


“나는 마트에서 두부 사달라고 세 번을 말했는데 순두부를 사왔어. 두부랑 순두부가 같은 거래.”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 아기 짐 챙겨달라고 했더니 자기 노트북만 들고 나왔어.”


웃기면서도 웃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아이를 안고 있던 건 전부 엄마였고, 가방을 다시 가지러 들어간 것도, 마트를 다시 간 것도, 아기 짐을 챙긴 것도 전부 엄마였으니까.


한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안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채널이 다른 것 같아.”

그 말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1999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 하나를 발표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두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과제는 단순했다. 흰 옷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것.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스몰빅토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흐릿한 감정이 선명해지고, 말하지 못한 마음이 언어가 되는 곳.이제부터 저와 함께 그 공백을 채워나가보죠.

1,53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8화아내의 출산시 남편이 해야 할 행동지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