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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13. 2023

규슈에서 국화 향기를 맡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

고등학생들과 함께 규슈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하려는 일과 관련하여 일본어 번역도 하고 공문도 만들어 일본 외무성에 보내는 작업을 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이렇게 대견한 아이들이 일본에 가기 전에 조심스럽게 말한 것이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가 있는 거리에서 자유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곳이고 해서 두 시간 정도 다자이후 거리에 머물기로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하여 아이들이 꼭 먹고 싶다 하는 유명한 라면집에서 줄을 서서 라면을 먹게 됐다. 30분은 서 있었을까. 일정도 팍팍한데 괜히 서 있었나 걱정이 됐다. 그렇게 라면이 나왔고 첫 번째 젓가락을 뜨는 순간 또 한 번 걱정했다. ‘아. 이걸 먹으려고 줄을 섰나. 아이들이 실망할 거 같은데’ 라면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돼지 비린내도 많이 나고 국물도 너무 짰다. 어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게 아닌가. ‘아~ 이 집의 비결이 이거였나?’

라면집에서 아이들과 헤어진 후 급히 문서를 보낼 곳이 있어서 와이파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아이들 말로는 이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가 정말 예쁘니 와이파이를 쓰려면 그곳에 가라나. 그래서 라면을 먹자마자 급히 언덕길로 주욱 올라갔다. 멀리서부터 새둥지 같은 스타벅스가 보인다. 안에 들어가서 겨우 자리를 잡고 글을 쓰는데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이 매장 안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느낌이랄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이쁜 스타벅스를 추천하고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동행한 여행 가이드에 의하면 다자이후 텐만구는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곳 중 하나라고 한다.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는 곳으로 말이다. 대입 합격 기원을 하기 위해 한해에 전국에서 700만 명 정도의 학생들이 다녀간다는 소리를 듣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라면을 먹기 위해 30분 정도 줄을 서 있으면서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을 지켜봤는데 그 친구들도 700만 명 중에 일부였구나 싶다. 일본의 대입 시험이 다가오면 주차장에 차를 못 댈 정도로 학생들이 밀려온다는 말에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급히 글을 마감하고 언덕길을 올라가서 텐만구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소 동상을 만지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는데 자유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소를 만지는 것은 포기했다. 하긴, 지금 나이에 대학에 갈 것도 아닌데 소를 만져서 뭐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 니가타 산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연못을 지나가는데 아차! 싶었다. 나는 대학원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를 위해 소를 만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다시 못 올 수도 있는 곳이란 생각에 소는 못 만졌어도 부적이나 사가자 하는 마음으로 학업성취 부적을 샀다.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대학원을 위해 부적을 사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사람 마음이란 이런 걸까.


그렇게 자유시간은 5분 남았고 이제 버스로 돌아가야겠다며 걸어 나오는데 가지런히 놓여있는 국화의 모습이 보였다. 엄청 큰 국화들이 한 송이 한 송이씩 자태를 뽐내며 있었다. 일본다운 모습이었다. 국화들이 전시된 곳을 지나가니 국화향이 너무도 향기롭게 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국화꽃을 보며 생각해 보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어야 하는데 나는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학업성취 부적을 사며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마냥 좋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요행이나 바라고 있는 내 모습이 잠시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년엔 크고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울어보는 한 해가 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 들른 학생들 모두 나와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재밌게도 나는 부적을 사고 일 년 뒤에 대학원에 갔다. 사람이 무언가 하려고 계속 생각하다 보면 결국엔 이뤄지나 보다. 그날 산 부적은 아무 생각 없이 가방 안쪽 작은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야 발견됐다. 그래도 좋은 대학원을 가게 됐으니 효험이 있던 걸까. 아니면 내가 공부를 더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결국엔 통했던 것일까.

얼마 전 도쿄에 갔다가 유시마 텐만구(湯島天満宮)에서 열린 국화전을 보게 됐다. 전철역에서 우연히 국화전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남편이 가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가서 보니 예전에 남편과 매화를 보러 갔던 곳이었다. 한 번 와본 곳인데 이름도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우리가 바보가 됐냐고 막 웃었다.

텐만구를 가득 채운 국화를 둘러보니 신도들이 각자 열심히 키운 국화를 출품했다고 소개돼 있다. 국화마다 키운 사람의 이름이 걸려 있고 어떤 의미로 국화를 키웠는지 설명돼 있었는데 이것도 국화라고 싶은 모양의 꽃들도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건지 그냥 품종이 저렇게 된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사진 맨 오른쪽에 노란 국화의 꽃잎이 다 펼쳐져 있는데 저걸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 미치겠다!! 저거 피다가 잘못 피면 꽃잎 다 상해서 그해 국화전은 도루묵이 됐을 텐데!) 다들 이 국화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물을 주고 가꿨을까.


국화를 보며 내가 대학원에 가서 지금의 전공을 하게 된 것도 단순히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부적을 샀기 때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몇 년 동안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입시 정보를 수집하고 어떤 학교, 어떤 과가 나에게 맞는지 고민했던 시간이 지금의 결과로 나왔을 것이다. 고민했던 학교는 두 군데였고 알아보던 과는 곳이었다. 다른 학교 다른 과를 갔으면 지금 나와는 정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추천하는 곳에 가지 않고 내가 선택해서 지금의 나를 꾸렸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열심히 국화를 키운 사람들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이제야 내가 한 송이 국화꽃이었다는 것이,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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