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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04. 2024

그 아이의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Image by ゆう from Pixabay

오랜만에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문제는 딸이 집으로 돌아오려면 한 시간이 나 남았다는 것이었다. 애매하게 집에서 뭉그적대느니 학원 수업 하나를 빼기로 하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아노 학원에 가서 오늘은 수업을 못 한다고 얘기하고 건물 1층으로 내려와서 기다리라고 말이다. 아빠가 일찍 와서 밖에 나가 밥을 먹을 거라고 얘기하니 전화기 너머로 방방 뜨는 아이의 음성이 들려온다.   

   

남편이 피아노 학원 건물 뒤쪽에 주차하자마자 딸을 데리고 오기 위해 차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오래 기다릴 때면 엄마가 아픈지, 넘어졌는지 걱정하며 울먹이고 서 있는 딸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재빨리 건물 앞으로 가서 이름을 부르니 엄마~하고 빠른 걸음으로 딸이 다가온다. 아빠가 빨리 온 것도,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지만 아이는 학원을 빠지는 것이 매우 행복한가 보다. 아빠 차가 건물 뒤에 있으니 빨리 가자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가 따라온다. 아이의 같은 반 친구다.    


나는 그 아이를 안다. 늦은 저녁까지 놀이터에 있는 아이, 누군가가 나타나면 졸졸졸 따라가는 아이, 누군가를 따라갈 때마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서 집에 못 가고 있다고, 돈이 없어서 과자를 못 사 먹는다고 얘기하는 아이다. 하루는 아파트 단지 야시장에 나와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서 간식도 못 사 먹고 바이킹도 못 탄다고 여기저기 떠드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아이의 표정을 무심히 지나쳤다. 막내의 유모차를 미느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에게 솜사탕을 사주고 돌아 나오는데 그 아이가 또 보인다.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또 같은 얘기를 떠들었는지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서 엄마랑 같이 나오라는 충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지 아이는 재빨리 다른 타깃을 찾아 나선다.    

Image by ゆう from Pixabay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 오라고 해서 저녁이라도 먹여 보낼까 싶다가도 한 번 오면 끈질기게 초인종을 눌러대지 않을까 고민스럽다. 밥숟가락 하나 놓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들까.    

  

딸을 뒷좌석에 앉히고 나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차 안에 있던 짐을 정리하느냐고 정신이 없다. 그때 그 아이가 와서 남편에게 인사를 한다. 남편은 자기에게 말을 시켰는지도 모르고 허리를 숙여 차 안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머쓱해진 아이는 자리를 옮겨 조수석 옆쪽으로 왔다. 딸에게 손을 흔들며 부럽다는 말을 연발한다. 그때 나는 보았다. 혹시 자기도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아이의 표정 말이다. 혹시 내가 오해했나 싶어서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아~ 나도 배고픈데~”      


라는 말이 들린다. 저 아이는 혹시라는 초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냥 무시하고 갈지 뭐라도 건넬지에 대한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를 보니 차가 출발할 때까지 떠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위험하니까 저리로 가라는 말이 아이에게 들릴 리 없어 보였다. 나는 창문을 내려 이천 원을 건넸다. 저기 가서 와플 하나 사 먹고 얼른 엄마한테 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아이가 겅중겅중 뛰며 좋아한다. 


반년이 넘도록 그 아이에게 돈을 건네지 않은 이유는 내가 지갑을 연 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계속해서 돈을 요구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 누가 돈을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면 덥석 가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평범하게 흐를 수 있는 하루의 끝에 친구가 부모와 함께 외식하러 가는 장면이 그 아이의 가슴에 박혀버릴까 봐 걱정됐다. 그럼 너무 슬프니까 말이다. 


아니다, 그것도 핑계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바쁜 엄마에게 나랑 놀아달라고 투덜댈 수도 없고 다른 친구들처럼 여행 가자고 하기엔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늑한 온기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우리는 왜 이런 단란함을 누릴 수 없는지 속상했다. 그러나 내색할 수 없었다. 그러면 엄마가 너무 슬플 테니까 말이다. 그 아이의 뭉그적댐을 보다가 투정 한 번 부릴 수 없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먹먹해졌다. 그래서 그 아이의 눈빛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을 것만 같다.      


매일 오후, 아파트 단지를 떠도는 그 아이는 겨울이 돼서 해가 빨리 지는데도 불구하고 오후 7시까지 놀이터를 지키고 있다. 엄마가 연락이 안 돼서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나는 무엇이 걸리길래, 아이의 같은 반 친구에게 저녁 한 끼 대접을 못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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