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상담이 무료라니,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우리 집 꿈나무 둘째는 웬만해선 밖에서 발생한 일들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건 나 때문에 그렇다. 아이는 뭔가 답답하고 억울해서 얘기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그런 사소한 건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해’였다. 그래서 아이는 입을 다물고 어느 정도 혼자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정 안 될 때 얘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나에게도 위기경보음이 윙~하고 울릴 때가 있는데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을 때다.
일곱 살 때의 일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는 친구가 계속 때리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말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괴롭힌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럴 땐 즉시 선생님한테 말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제어가 안 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또 때렸다고 한다. 그럴 땐 무조건 그 자리에서 선생님을 불러서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 뒤로도 친구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친구가 또 때렸는데 선생님을 불러도 선생님이 안 왔다나. 그래서 그럴 땐 크게 울어버리라고 했다. 그래야 어른들이 달려오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이의 불편함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이었다. 아이와 여행을 갔다가 친구들에게 줄 초콜릿을 왕창 사고 있었는데 아이가 슬며시 하나를 빼더니 누구는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는 생각 없이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주게 했다. 그게 아이로서는 어른에게 최대한 얘기한 것이었을 텐데 나는 그 신호를 무시했다.
아이가 친구 때문에 괴롭다고 또 운다. 종이접기를 잘하는 친구한테 상자를 접어달라고 부탁하고 접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괴롭히는 친구가 자기가 접어 준다고 손을 끌고 갔다는 것이다. 덩치가 워낙 큰 아이라서 질질질 끌려갔는데 막상 종이는 안 접어줘서 울었다고 한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한테 상담 신청을 하고 나서도 개선이 안 되는 상황이라서 다시 여쭤봤다. 서로 떼놓으려고 해도 우리 아이가 그 아이랑 잘 놀 때가 많다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당장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한다. 우리는 거길 3년이나 다녔고 새로 온 아이가 괴롭히는 건데 우리가 왜 옮겨야 하냐고 짜증을 냈더니 남편이 말했다.
그럼 애가 맨날 맞고 오는데
계속 맞아도 괜찮다는 거야?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어린이집을 바로 그만두고 근처 유치원으로 옮겼다. 열받아서 그만두는 학부모에게 체육복 등을 어린이집에 주고 가면 내년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물려주겠다고 반납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 하. 이런 용건은 며칠 지나서 말해도 되지 않나? 또, 그만두고 바로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되면 보육료 계산이 복잡해지니까, 일주일만 어린이집에 더 있다가 퇴소하는 거로 바꾸겠다고 원장이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이런 곳에 아이를 맡겼다니 빨리 옮기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책망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다른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막내를 유모차에 앉히고 있었고 우리 딸은 동생을 보고 반가워서 유모차에 얼굴을 들이밀고 우르르르 까꿍을 하고 있었다. 평화롭던 장면에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가 우리를 보고 다가와 있었는데 우리 딸의 등을 퍽 하고 때린 것이다. 동생을 보지 말고 자기랑 얘기하자고 한 행동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것이 폭력을 동반했다는 것이었다. 엄마인 내가 있었음에도 제어가 안 되는 상태까지 와버리다니. 한 번도 그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는데 그땐 정색하고 말을 했다. “너, 친구 때리는 거 아니야. 시간도 늦었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 때린 아이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친구 때리는 거 아니라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어린이집까지 그만둔 상태라서 화가 날 대로 나 있던 나는 그만둔 어린이집 원장에게 연락해서 해당 아이 부모에게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지속해서 때리고 있는데 어른이 있어도 자제가 안 되는 상황임을 부모가 인지해야될 것 같다고 전달했다.
나는 어린이집만 그만두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계속 참아준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아님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화만 쌓였던 일은 가끔가끔 생각나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그때 제대로 대처해야 했는데, 아이가 계속해서 맞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다. 다사다난한 초등학교 1학년을 어찌어찌 무사히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별거 아닌 일은 덤덤하게 넘기라고 말하는 나의 습관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걔가 못된 말 했니?
당연하지.
얼마 전부터 딸에게 와서 못된 말을 내뱉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랑 대화하다가 발생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 아이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톡 끼어들어서 말을 툭 뱉고 가곤 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태권도 학원에서는 열심히 운동하면 포인트 쿠폰을 준다. 아이가 교실 자기 자리에서 쿠폰을 정리하는데 태권도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가 와서 이거 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태권도 학원에서 주는 포인트라고 말했더니 못된 말을 뱉는 애가 “이런 쓸모없는 걸 왜 들고 다니냐?”하고 말했다.
하루는 친구와 혈액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O형이야!라고 친구가 말하길래 자기는 B형이라고 딸이 말했다. 그랬더니 못된 말을 뱉은 애가 “B형은 커서 뚱뚱해지는 혈액형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와서는 그림 왜 이렇게 못 그리냐고 떠들고 너는 눈이 짝짝이어서 못생겼다고 떠들기도 했다. 이렇게 사소한 에피소드가 모여서 10여 번이 반복됐다. 아이가 못된 말을 내뱉는 아이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서 전학 가고 싶다고 한다. 아이의 일곱 살 때가 떠오른다. 그땐 물리적 폭력이었는데 이번엔 언어적 괴롭힘이다. 아이는 듣고 싶지 않아, 하지 마라고 해도 걔는 계속한다고 짜증 낸다. 그러면 못 들은 척하라고 했더니 그래도 계속 와서 얘기한다고 멈추지를 않는다고 한다. 아, 진짜 어떡하지?
그때 생각났던 것이 있다. 함께 학교 상담실! 함께 학교 홈페이지에는 이런 고민을 전문상담가에게 얘기하면 답을 받을 수 있는 코너가 있다. 오예! 그래서 열심히 글을 작성해서 올렸다. 그랬더니 친절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을 정리해서 알려주셨다.
먼저 친구의 나쁜 말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이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께 요청해서 우리 아이에게만 유독 이러는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아이에게도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하는지 확인해 볼 것을 권유해 주셨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집어주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이와 등교하면서 그 아이를 마주치면 안녕하고 인사해 보라고도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그 친구의 조절 기능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끼리 서로를 존중하며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일단, 우리 아이가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등굣길에 그 아이를 마주하면 인사 정도를 건네보려고 한다. 1학기가 끝나가고 있으니, 그 아이도 여름방학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려고 한다. 2학기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우리 아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비하하고 스트레스를 준다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시에 말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일곱 살 때 벌어진 일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학교에 상담코너가 있다니, 너무 믿음직하다. 혹시라도 글을 읽고 싶은 분이 있을까 봐, 나의 상담 게시글을 공개 처리해 두었다.
우리 아이가 함께 학교의 도움을 받은 만큼, 2학기에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