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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Nov 08. 2024

커피

검은 자태 속에

그 빛이 더욱 영롱하구나.

물 한 방울 찍어 둔 곳에

연기처럼 서려있는

당신


온종일 그 자리에서

온종일 그 모습으로

콩 만한 점으로

찍어둔

당신


당신의 위대한 그 이름은 커피



온몸을 분쇄시키는

찢어질 듯한 고통도

깊이만큼이나

반항도 없이


한 모금 향으로

남겨진

당신


때로는 독약으로

때로는 보약으로

때로는 우울한 자의 친구로

때로는 서글픈 자의 눈물로

무심한 듯 톡 떨어지는 한 방울


숭고한 당신은 

커피라오


위대한 당신은

커피라오



(해설)


하루에

원두+설탕& 원두, 믹스커피 등,

대 여섯 잔을 마셔대는 586세대로

아직도 커피 맛이 어떤 맛인지 모르고 있다.


그저 기분이 down 되면,

입이 심심하면, 배가 고프면

무의식적으로 한 사발씩 들이키고 있다.


그래서 커피는 내게 영양제나 밥(?) 대용으로

칼로리를 높이고 싶을 때 간편히 먹는 대용식과도 같다.

그래서 끊을 수 없는 게 커피다.


나이가 먹을수록 배는 고프지만 씹는 것 자체가 귀찮고,

돌아가신 울 아버지처럼 맨밥을 죽처럼 끓여 호로록 마시거나

아니면 믹스 커피 두봉을 뜯어 진하게 완샷을 한다.

그럼 배고픔은 잠시 잊어버릴 수 있다.


에효~~~

산다는 게 하루 세끼 먹고살자고 아둥댄다는데

난 맛의 재미를 잃어버렸으니 우짤거나.


가끔씩 원두커피를 분쇄기에 넣어줄 때마다

새까맣고 윤이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신비롭기만 하다.


원두 한 알을 입에 넣고 씹어볼 때도 있는데

씁쓸하기보다는 구수한 숭늉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마치 볶은 땅콩 먹듯

 커피머신 앞을 지날 때마다

한 알씩 꺼내 오도독오도독 씹어먹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 엄마!  밥 안 먹어서 죽으면 어캐?? 영양실조 걸리면 어캐??"

가만히 듣던 나는 "이놈아 난 90은 몰라도 80 이상은 살 거야. 걱정 마."라고 대답한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도 잃어버리고

맛있는 것에 대한 기준도 없어지고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만 내놓고 먹어버린다.

마치 배를 채우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그리곤 한 번 먹은 그 반찬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누가 차려주는 밥 아니면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싶지는 않다는 이 맘은 뭔 깡다구인지


그럼에도 커피는 싫증이 나지 않으니 내겐 신이 주신 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거기에 커피 맛까지 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ㅡㅡㅡ


눈을 뜨면서 한 잔, 출근하면서 한 잔,

장거리 갈 때는 심심해서 한잔, 점심 후 한잔, 지루한 오후에 한잔, 퇴근 전 한 잔

무슨 보약처럼 먹어댔더니 얼마 전 새벽 복통을 견디기 못 하고  병원에 갔다.

위 내시경을 했더니만 선홍색 위 벽에 하얀색 크러치... 위염이라고 한다...

 조직까지 떠 냈다니 죽을병처럼 심란해졌다.


곰곰 생각하니 빈속에 라테 두 봉 

점심때 라테 두 봉

저녁때 라때 두 봉을 열심히 먹었더니 그렇단다.


아픈 것보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없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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