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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여자의 이야기(4)

그 놈의 지독한 사랑

by 블랙홀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가 봐요.

매일 손을 잡아주던 남편은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변한 건 없는데 뭔가 찜찜하기만 했죠.

그게 뭘까??


말 한마디만 하면 자다가도 왕복 두 시간을 달려 갖고 싶다는 것을 구해왔고, 수술이 없는 날은 일찍 귀가해서 놀아줬고, 한 없이 다정하기만 한 남편인데 뭔가 2%가 부족했어요.


알고 보니 남편은 하루 종일 붙어있던 뚱뚱한 아줌마 간호사와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파트너로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얘기를 병원 사무장에게 전해 들었을 때의 그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증거도 없이 남편에게 따질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어요.

적어도 내 입장에선 현장을 보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남편에게 얘기한 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 있었거든요.


한창 바쁜 시간에 직장에서 나와 남편의 병원으로 갔을 때 당황해하는 다른 간호사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그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죠.

그 여자는 뚱뚱하고 나이도 많은 적어도 외모는 나와 비교가 되지 않는 상대였고, 더구나 딸도 있는 유부녀였거든요.


천천히 문을 닫고 나오는 뒤로 다급하게 부르는 남편의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데스크를 지나 밖으로 나왔어요.


소문이 사실이면 어쩌지? 그들이 함께 있다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며 깽판을 쳐야 하나? 모른 척 그냥 지내야 하나? 몇 날 며칠을 밤 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예상과는 달리 정신은 더 맑아지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왜 그랬느냐고 화를 내지도 따지지도 않았어요. 남편도 눈치만 볼 뿐 먼저 얘기를 꺼내지는 않더라고요.

더는 견딜 수 없어 먼저 얘기를 했죠.


밖에도 남편은 이렇다 할 얘기가 없더라고요. 다만 그녀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고 측은지심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당장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내 보겠다고. 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 해 겨울, 난 친정엄마 간병을 이유로 친정 근처로 발령을 희망했고 그렇게 우린 별거 아닌 별거에 들어갔어요.


남편은 사위로 남편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혼생활은 너무 버거웠어요. 흙수저의 아픔을 겪었기에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암담하기만 했어요.


모든 것은 순간이고, 이 삶이 끝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았만,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잠이 안 오면 발바닥이 찌릿거리고 온몸은 열이 나듯 화닥거리는 거 아세요?

그래서 밖으로 나간 건데...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몸이 기우뚱하더니 앞으로 획 쏠리더라고요.


그 순간 아! 이건 아닌데 싶었는데 제 자리로 갈 수는 없더라고요.

하며 한숨을 길게 내뿜는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적어도 일을 저지를 만큼 대범하지 못 한데 말이죠.

여기저기서 탄식과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마친 그녀의 숙인 얼굴에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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