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시작되자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더운 날은 a가 더 조절을 하지 못했다.
살갑고 정은 있어 조잘조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고, 난 그다음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해서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했다.
주 2회 수업이니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주중이라도 수업이 없는 날에 있었던 일은 얘기를 잘해줬다.
수업 전, "오늘 기분은 어때" " 좋은 이유는 뭐야?" " 나쁜 이유는 왜 그런데?" ----"오늘 내 기분은 이래서 이래" 하는 말문을 튼 후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a는 5분 일찍 끝내달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이유 인즉은 다음 이어지는 방과 후 시간이 체육이라서 빨리 가고 싶단다. 이런~~
난 정규시간과 달리 보충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 안되지만, 5분 일찍 끝냈을 때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냐며 거절했다.
블록수업을 해서인지 정규수업을 5분~10분 정도는 빨리 끝내주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난 그 부분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왜 있었겠나!
물론 계절에 따라 사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수업을 할 수는 있지만 과목별 수업시수가 정해져 있고, 40분 수업시간이 정해져 있고,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교사 멋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학생요구에 따라 휘둘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세세히 설명을 하는 내 어법을 a는 가장 싫어한다. 잔소리처럼 들린단다. "그만해요. 에이 차라리 문제 풀게요" 하는 식으로 끝났는데......
그날은 5분 일찍 끝내지 못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 줬더니만 책상을 주먹으로 꽝 치더니 들고 있던 연필을 그대로 반토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힘도 세다.
그리고 얼굴을 울그락 붉그락거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a의 돌발상황을 귀가 따갑게 주변에서 들은지라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팔짱을 낀 채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수업하기 싫으면 너만 나가....... 왜 안 나가고 그러고 있냐고 물었더니 무섭게 째려봤다.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하는 습관적인 태도)
" 너 이거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해? 내가 교사이기 전에 어른인데 어른 앞에서 이래도 되니? 집에서도 이러니?
" 그건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얘기예요. 선생님이 그래도 돼요? 집은 왜 들먹여요"
" 그래? 학생인권만 있고 교사인권은 없는 줄 알아? 나도 인권 있거든 "
그러자 갑자기 소리를 꽤액 지르더니 제 의자를 걷어찼다.
" 콱 죽여버리고 싶다"
" 허걱!!! 죽이고 싶다고? "
씩 씩 씩~~~~
" 으응 그래? 너희 돈 많아? 죽이고 싶다고? 그건 협박이고, b가 있는데서 그러는 건 명예훼손이야. 교사 인권 침해고.
부모님이 이런 널 보면 뭐라고 하실까?"
성질이 나서인지 세모꼴 눈이 되어 주먹을 쥔 채 씩씩거리고 있다.
" 아버지 전화번호 몇 번이야. 니가 이러는 게 잘하는지 아닌 지 아버지께 물어보게 "
"그건 왜 물어봐요. 글구 전화번호는 개인정보잖아요, 안 일러줄 거예요"
"그래? 그럼 담임샘에게 물어봐야겠네. 난 널 가르치고 있고, 넌 미성년자고. 아버지는 네 보호자잖아?? 그러니 보호자에게 물어봐야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 아휴~~~ 혈압 올라. 쓰러지시겠네~~"
엥? 이것 봐라.
" 흥, 너만 혈압 있는 줄 알아? 나도 혈압 있거든? 정말 스트레스받아 쓰러지기 일보직전이거든. 아이고오~ 뒷목이야. 너 혈압 얼마야?"
" 80인가요??"
그 와중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 웃기고 있네. 난 140이거든? 나 쓰러지면 너 때문인 줄 알아. 쓰러지면 병원비는 부모님이 알아서 내주시겠지??? b야 나 쓰러짐 119 불러라 "
하아~~ 이런 깐족+이죽거리는 습관이 또 튀어나왔네.
애를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 참아라 참아. 이래서 나이가 들어도 푼수 같다고 하나?
하긴 부부싸움을 할 때도 무표정에 낮은 톤으로 말하는 게 더 화가 난다고 남편은 성질을 내 곤했었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애랑 말싸움이나 하는......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번 터진 말문은 멈추질 않았다.
b는 구경하듯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집중하고 있다.
그날은 수업도 못하고 시간만 가버려 다음 방과 후 때문에 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교감샘이 먼저 물었다.
" 어제 얘기 들었어요. 아휴 a 때문에 걱정이네요. 불쌍한 아이니 선생님께 부탁드릴게요"
"......."
난 씩 웃을 수밖에 없었다.
" 5분 일찍 끝내셔도 돼요. 아이들은 그저 잘 데리고만 계셔도 저희는 감사합니다"
그렇게 a의 소원대로 5학년만 5분 일찍 끝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지?
a는 당사자이니 말을 안 했을 거고, 같은 수업을 듣는 b가 얘기를 했을까?
발 없는 말이 천리 긴다고 그렇게 교무실까지 들려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화가 났다.
잘 하든 못 하든 교실 안에서 일어난 일은 교실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수업방침이다.
누군가 수업의 질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귀담아듣겠지만...... 수업연구대회에서 ㅇㅇ도에서 1등급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교실 내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하면 교사의 활동에 대한 침해이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수업은 잔소리로 시작했다.
" 밖에 나가서 얘기한 사람, 누구야! a 너? 아님 b 너야?
둘 다 도리도리를 하니...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실 안에서 벌어진 일은 밖에 나가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일장 잔소리를 해댔다.
너희가 5학년인데 3학년 단계 수학수업을 받는데, 그것도 못 푼다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너희 기분은 어떻겠냐고~~~
그 후부터 내 잔소리가 시작되려면 a는 얼른 공부하자며 문제집을 끌어다 당기거나 애먼 b만 잡는다.
" 넌 문제집도 안 펴고 뭐 하냐? 애가 눈치가 없어 "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처럼 a는 항시 불안 불안하다.
그저 가이드라인을 넘지 않으려 서로 눈치싸움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교육현장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서로 핑계만 대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