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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Aug 07. 2024

눈치제로, 소신주의(1)

a와 같은 학년, 같은 반으로 함께 수업받는 b는 '내 갈길은 내가 간다'라는 소신주의자이지만 눈치는 제로라서 가끔 당혹스럽기만 하다.


정신지체라는 정식 진단을 받았다지만 주어진 것은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고. 한 박자 느리지만 자신의 의사는 소신껏 표현하는 5학년 남자아이다.


부모님과 이란성쌍둥인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으며  전형적인 일반가정에서 바르게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일어나는 속상한 일은 주로 여동생이 기어올라 잦은 다툼을 하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둘 다 벌을 서고 발바닥을 맞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1mm 삭발이 나 나시 티를 입고 와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개의치 않는 소신 있는 아이다.


주말이면 가족과 외식을 하고, 마트를 가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땐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눈만 깜박거리더니, 익숙해지자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묻지 않아도 먼저 얘기해 줬다.


다만 생각하면서 말을 하다 보니 끝까지 들으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조금은 느려도 꾀부리지 않고 해결했으며,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수업에 싫증을 날 때쯤이면 난 먹고 싶은 것을 b에게 그려달라고 했다.

고구마, 포도, 파인애플 등 등...... b는 준비하는 데만 5분을 들여서라도 책상 위에 모두 펼쳐놓은 뒤 비로소 연을 잡았다.

엄지손톱만 하게 작게 그려 색을 칠하다 보면 경계가 없어져 두리뭉실해져도 그 표현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a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학급에 남자아이가 셋이다 보니, 서로 c를 사이에 두고 기싸움을 하다 진짜 싸움이 일어나는 게 태반이었다.


c는 이런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a와 b 사이를 오가며 줄 타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c가 싸움을 시키고 쏙 빠져나가면 a가 c를 대신해서 b에게 퍼붓고, b는 a가 한 말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듯했다. 4학년. 3학년 때 있었던 얘기를 들먹이는 걸 보니.


시작은 " 넌 여자 친구 없지"  "너 누구랑 친해"  "넌 못 하지?" " 이 돌대가리야"  등 상처를 주다가 주먹다짐으로 번진단다.


여자 친구는 어디서 사귀냐 묻자 지역 채팅에서 사귀고, 방학이 되면 만나러 가기도 한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조절을 못 하는 a는 한바탕 퍼붓고는 금방 뒤돌아서 잊는 듯했지만.

b는 화가 나면 작은 눈을 똑바로 뜨고 얇은 입술을 꼭 다물면서도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a를 멈추기 어려우니 b에게 '니가 참아' ' 속상한 니 마음 이해해' 하고 말을 하니 b는 퉁명스럽게 " 속이 상한 게 아니라 맘 속에 화가 쌓여 터질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니 할 말이 없다.

지난 5년 간 얼마나 갈등을 겼고 스트레스가 쌓여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농어촌 소규모 한학급 학년에서, 1학년 아니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부터 좋으나 싫으나 6년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피해자는 졸업 때까지 피해자인  교육현장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위 표지이자 내 프로필 그림은 b가 그려준 뽀글이파마를 한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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