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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상한 대화
세 번째 여자의 이야기 (2)
새내기 출발
by
블랙홀
Jun 22. 2025
입학식 때는 대학생임에도 교복이 있단다. 무슨 사관학교도 아니고...
남학생은 곤색 정
장
. 여학생은 투피스를 입었다.
입학식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지만 긴장해서인지 피곤했다.
여학생만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어 그녀는 3층 건물의 205호를 배정받아 들어갔다.
출입구 양쪽에 철제 캐비닛이 두 개씩 있고 좌우로 2층 침대가 있어 선배는 아래층. 신입생은 위층을 쓴다고 했다
.
선배들은 침대에 커튼을 달아 사생활이 보호(?)됐지만 2층 침대는 뻥 뚫린 공간이라 누워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
여
조심해야 했다
.
창가 양쪽에 선배들 책상이 있다면 1학년은 중앙에 마주 보는 형태라 집중이
안
됐다.
기숙사 1층 입구 옆엔 작은 음악부스가 있어 오후 7시부터 9시까진 신청하는 음악을 틀어줬는데, 대부분은 공중전화로 외부남자 친구가 내부 여자 친구에 바치는 신청곡이
대부분이었다.
마이크가 기숙사 건물 전체와 식당. 운동장 할 것 없이 울려 퍼지니 인기 좋은 애들은 몇 호 ㅇㅇ이름이 하루에도 여러 번 방송을 탔고, 누구는 누구랑 연애한다는 것을
홍
보라도 하듯 외부신청곡은 밀려 터질 지경이었다.
뮤직박스 옆에 있는 서너 평 정도의 카페테리아에선 간단한 음료와 아이스크림. 과자를 파는데 모두 학생들이 운영해서 시간제한이 있다고 했다.
100여 명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1층 식당은 넘 일찍 가면 길게 줄을 서야 했고, 그 시간을 피해 뒤늦게 가면 식당문을 닫는 시간이라 조리사님이 눈치를 준다고 했다.
첫날은 같은 방 선배들이 기숙사 곳곳을 안내해 줬고 전통이라며 과자파티를 해주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밤 9시엔 기숙사 철대문이 닫히고 점호를 받는다고 했다. 사감샘은 기숙사대표랑 1층부터 3층까지 순회를 했고, 방장언니는
미리 방문을 열고 출입구 양쪽에 두 명씩 기다렸다가 인원체크하고 별일 없는지
방장에게 보고를 받은 후 지나갔다.
만약 한 명이라도 없음 그 방은 비상이 걸렸고1차 경고를 받은 후 2차까지 걸리면 부모님께 연락이 가고, 3차 경고엔 퇴사를 당할 만큼 규율이 엄격했다.
평일 9시. 주말 9시 30분 점호시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에 갔다가도 시간 내에 들어와 자리를 지켜야 했다. 군대는 아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점호시간이
있었으니 사감샘은 아무나 못할 것 같았다.
주 7일 점호를 했으니 방학 때만 해방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시간에 쫓긴 학생을 태운 택시가 기숙사 밖에 나란히 늘어섰고, 철대문이 닫혀있으면 구두를 신었건 스커트를 입었건 담장을 넘어 들어가야 했다.
언젠가부터 식당 쪽 담장 바깥엔 벽돌이나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그 걸 딛고 바깥에선 남자 친구가 받치고 위에선 담장을 넘는 여학생들로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지나는 사람들은 킥킥거리며 웃다가도 정말 다급해 보이면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도와주곤 했다.
담장을 넘은 위층 학생은 화장실에 갔다 오는 척 슬그머니 점호에 참여하지만 1층은 순번이 빨라 꼼짝없이 걸리곤 했다.
담장을 넘은 동지들은 담장 밖 어느 곳이 높아 넘기 쉽다는 둥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우리 205호 방장언니는 재수를 하고 들어왔다는 서울깍쟁이였고, 다른 한 언니는 인근도시에서 왔다는데 지방출신이라 그런지 친절했다. 이건 순전히 내 선입견이다.
재수선배를 a, 친절선배를 b, 그리고 나와 같은 신입샘친구를 c라고 부르겠다.
a는 cc커플로 남자 친구는 졸업하고 현재 교직에 있어 주말이면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돌아올 때는 선물이나 용돈을 받았다며 자랑했지만 감정기복이 심 한 듯 보였다.
b는 눈치가 없어 보였지만 친절했고 얘기도 잘 들어줬고
데이트하러 나가는 걸 못 봤다.
한마디로 범순이었다.
동기인 c는 작은 키에 쌍수로 왕방울만 한 눈은 항상 생글거렸고 붙임성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말이 없는 나와는 달리 a와 b에게 사근사근해서 학교정보를 잘 얻기도 했다. 한 박자 느린 난 c를 통해 전달받곤 했다.
처음 며칠간은 집생각이 많이 나서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렸지만 첨 겪는 생활이라 적응하기 바빴다.
대학은 낭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책상만 1인용으로 바뀌었을 뿐 하루 4~5시간 강의를 꼬박 들어야 했고. 기숙사 식사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300여 미터 거리를 말 처럼 뛰어다녔다.
톤 없이 지루한 교수님의 목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려 졸음이 쏟아졌고, 작은 목소리에 발음도 정확히 들리지 않는 강의시간은 따분하기만 해서 멍 때리곤 했다.
과제 리포트는 왜 이리 많이 내주는지 하교 후엔 학교도서관이나 기숙사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영락없는 고교생활의 연장이었다.
기숙사도
여럿이 생활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응을 하려 노력했다.
3월이 지나니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미팅이 열렸다.
주선을 잘하는 언니들은 그 바닥에서도 발바닥이 넓었고 대우를 받았다.
소개팅에서 맘에 드는 여진을 소개해주면 답례로 그 방식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사주기도 했다. 물론 주선한 언니는 가방이나 화장품 등 두둑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내게도 여러 번 미팅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선배든 동기든 남학생들은 동생으로 보일뿐 별 느낌도 없
고
교복을 입은 촌스런 모습이 고등학생 같아 거절하곤 했다.
선배들은 몇 번 권유하다 나중엔 물어보지도 않았다.
주말이면 집에 다녀오거나 엄마 따라 몇 번 갔던 인근 사찰에서 지내다 왔다.
행사가 있으면 엑셀로 신도명을 작성해 주고 얻어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단다.
시래기나 무생채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만든 비빔밥은 집밥에
비교가 안 됐다.
사찰 행사 때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은 비빔밥이 최고였다.
시래기, 콩나물, 무생채, 호박꼬지 등 을 넣고 고추장과 비빔장을 올린 후 시원한 미역냉국이나 된장찌개를 곁들이면 별미
중의 별미였다.
집밥이 그립고 심란할 때는 집 대신 사찰을 찾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사찰에 간다면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지 않아 그녀의 도피장소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애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엔 노인네나 중년 아줌마들이 많지 젊은 애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30대라면 얘기엄마, 또는 막내라며 어른들에게 귀염을 받았으니... 그녀는 마스코트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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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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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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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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