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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상한 대화
네 번째 여자의 이야기 (3)
갈등과 혼한란
by
블랙홀
Jul 26. 2025
잠시 후 젖은 머리를 툭툭 털며 타올로 몸을 두르고 나타난 남자는 친밀하게
다가왔다
.
모텔방까지 들어와 실랑이를 하는 건 꼴불견 같아 순순히 움직였다. 비누냄새가 가까이에서 풍겨온다고 생각했다
.
남자가 살그머니 그녀의 등에 코를 박고 살내음을 맞더니 번쩍 들어 침대 위에 눕혔다.
거대한 파도처럼 남자가 덮쳐왔고, 넓은 어깨는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눌러왔다.
아! 그랬다. 남자는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했다고 했지...... 지금도 유도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지...... 그걸 생각하지 못했네.
입술을 깨물었지만 금방 허물어졌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렸나 조바심이 난 여자는 그만 돌아가자고 성화를 해도 남자는 못 들은 것 같았다. 돌아가려면 차도 꽤 밀릴 텐데. 조바심이 걱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느니 세. 네시는 되었을 텐데 나올 때는 보랏빛 하늘에 노란 별들 사이에 초록빛 별이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밤이었다.
사우나에서 땀을 내고 나온 것처럼 온몸의 노폐물이 빠진 것 같아 오히려 개운한 건 기분 탓일까? 통증도 있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남편은 루틴대로 잠자리를 하는데 이 남자는 몸과 밀당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리고 며칠 동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 갈수록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누워있는 모습이 생소해 보였는지 몸 살이 심하게 났다고 생각한 남편은 약국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약을 사러 갔다 온 남편은 얼굴이 시뻘겋게 일그러진 채 약봉지를 방바닥에 패대기쳤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알고 보니 아이가 요즘 엄마가 이상하다며 저녁외출이 잦다고 일러바친 것이다.
세상에 믿을 것이 없다더니.
내 겐 별 말을 안 하더니만 아빠에게 고자질했다니 뒤퉁수를 맞은 듯 배신감을 느꼈다.
변명 같은데 나도 잘 한건 없지만 허구한 날 집을 비우는 남편도 잘 한건 없다고 대꾸하는 순간, 내 뺨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 얼얼하기보다는 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날 밤, 여자는 집을 나와 친정으로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찌검까지 한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나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며칠을 지냈나......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별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처음 몇 번 연락이 오던 남편은 금방 잠잠해졌다.
딸아이가 보고 싶었지만 매정한 아이는 전화한 번 하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다. 어쩜 그리 나를 닮았는지 차갑기가 그지없다.
친정아버지는 여자를 볼 때마다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렸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마음 단단히 먹으라며 토닥 거려 줬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며 친정에서 머물기는 아버지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돌아가기도 싫었다. 엄마와 상의 후 1시간 거리에 사는 동생네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편하긴 마찬가지겠지만 올케는 직장에 다녀 별로 부딪칠 일이 없었고 나도 눈치껏 청소며 집안 살림을 도와줬다.
친정엄마는 올케의 눈치가 보였는지 사흘이 멀다 하고 김치며 밑반찬을 만들어 왔다.
밤이면 죽어라 울어대는 개구리울음 와 후박꽃내음이 한데 어우러져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가끔씩 남자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가정을 버릴 만큼 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태풍과 장마가 길어지는 만큼 몸이 늘어졌고 두통도 생겼고 가슴 통증도 잦아졌다.
여자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정한 이 생활이 빨리 매듭지길 바랐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결혼을 하고서도 시댁과는 가까이 지내지 못했고 서먹서먹했는데 이번엔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별거기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해서 혼전임신을 할 만큼 열정적이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남편은 일을 했지만 여자의 씀씀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박봉이라 친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고,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장거리를 뛰며 외박을 하는 것도 싫었다.
처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남편은 행사 때 외는 가지 않았고, 간다 해도 그림자 취급하는 처남들에게도 군 소리조차 없었다.
장인이라기보다는 회사 사장님으로 보여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해도 티 내지 않았다. 주사나 도박은 물론 가정폭력도 없었다.
남편이 일 때문이란 걸 알면서도 육아에서 해방되고 아이가 클수록 옆 자리는 허전했다.
한 눈을 판 잘못이 컸다는 반성과 후회도 들었다.
이번엔 추석을 핑계로 이틀 전에 시댁엘 갔다. 혹여 그곳에서 남편을 만날까 싶어.
우연을 핑계로 다가가고 싶었다.
시댁은 읍내에서 3킬로 정도 떨어진 전형적인 시골 농가로 앞엔 인공저수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다.
밤낚시로 유명했고, 자의든 타의든 익사사고도 많았다. 언저리에 있는 어죽 집은 외지인들도 많이 찾아왔다.
사람이 죽고, 그걸 물고기가 먹고, 사람은 그 물고기로 끓인 어죽을 맛있게 먹었다
홀로 계신 시모는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 반갑게 맞아 주셨다.
큰 댁에서 제사를 지내는 터라 명절이라 해도 가족들이 먹을 음식만 조금씩 마련해 부담스러울 게 없었다.
시모가 장을 보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여자는 안방 귀퉁이에 던져진 옷 몇 가지와 차렵이불을 빨려고 사립문 밖으로 나갔다.
넓은 고무대야에 이불을 넣고 발로 꾹꾹 밟았어도 금방 혼탁한 물로 변한 게 연로한 시모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다.
그동안 며느리가 있어도 살갑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차렵이불이지만 물을 먹으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빨랫줄을 잡았는데 누군가 움켜쥔듯한 강한 통증을 가슴이 조여왔다. 빨랫대와 함께 하늘이 빙빙 돌아갔나 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지나던 이웃이 모로 누운 여자를 거칠게 흔들었다.
장에서 오시던 시모는 장바구니를 내 던지며 달려왔다.
구급차가 왔고 여자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곁에서 울어대는 시모에게 " 괜찮을 거예요. 울지 마세요. 저 여기 있잖아요" 하지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중환자실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앙상한 몸에 여기저기 주렁주렁 줄을 매달고 있었다. 조용한 걸 보니 말을 하는 이들이 없나 보다.
침묵 속에 오가는 간호사들의 사부작 거리는 발소리와 기계음만 들여왔다.
얼마 후 여자의 주변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고, 의사는 심경근색으로 인한 사망진단을 내렸다.
아니 뭔 헛소리야~ 주변의 작은 움직임조차 알아들을 정도로 의식이 또렷한데 사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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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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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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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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