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찌질이로 보였는데 30대 중반에 들어선 남자는 중후하고 젠틀한 멋까지 풍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창회가 끝나고 나서도 가끔 만나기 시작했다. 남자는싱글이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고, 여자는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니 죽이 맞기 시작했다.
막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외동이라 그런지 혼자서도 잘 놀았고, 혼자 있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처음엔 밥 먹고 술 마시고 끝났는데......
사건이 터진 날은 남편이 출장으로 오지 않는다는 그날이었다.
여자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남자를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고, 아이는 외할머니댁에서 주말을 보낸다는 생각에들떠있었다.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선 향수보다 더 진한 싱그러운 비누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누 향이 그리 진한 줄은 이 남자에게서 처음 느꼈다. 항상 기름 내 폴폴 풍기며 땀에 절어있는 남편과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남자가 숨겨진 맛집을 간다 해서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꽤 멀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넌다고 생각했는데 앞은 넓은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했다. 연륙교는 있었지만 행정구역 상으로는 어쨌든 섬으로 유명한 제부도였다.
이런~~ 밥 한 끼 먹자고 이렇게 까지~~ 한 시간 넘게 운전한 남자보다 더 피곤한 건 왜 그런지.
밖에서 보기엔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 것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온갖 해산물에 젓갈, 나물에 전까지......
섬아닌 섬을 찾아 밥과 술, 수다까지 곁들이다 보니 가을 해는 벌써 저물고 있었다. 서해의 낙조는 언제 봐도 처절하단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자는 동해를 좋아한단다. 마무리되는 곳보다는 시작되는 것에 꽤 마음을 두고 있었나 보다.
산 자락 아래 밭 옆에 보이는 노랑 빨강 네온사인이 모텔이라고 하기엔 낡았고, 여인숙이라고 하기엔 쓸만해 보이는 곳에서 들어오라 손짓을 했다.
공기업에 다녀 음주운전에 걸림 안된다며 남자는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하며 안 내리겠다고 너 혼자 쉬었다 오라고 했지만 실랑이를 하다 결국 이끌려 남들이 말하는 러브호텔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데 모텔이란 장소는 껄끄럽고 황당한 무게로 느껴졌다.
산자락이라 해가 일찍 떨어져서인지 바닷바람 때문인지 쌀쌀하기만 했다.
방안에 들어가니 따뜻했다.
두 평 남직한 작은 방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작은 창문엔 암막 커튼이 있어 밖은 보이지 않았고 더블 나무침대와 원형 작은 탁자 뒤로 크진 않지만 tv도 있었다. 내부는 그런대로 깔끔했지만 퀴퀴한 냄새는 핑크 빛 침구마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조석 온도차가 나서인지 땀을 많이 흘린 남자가 먼지 씻는다고 욕실로 들어갔다. 강요는 하지 않은 셈이다.
그 틈을 타서 빠져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시골이라 지나다니는 버스 시간은 맞추기 어려울 테고, 호출해야 올 것 같은 택시는코빼기 조차 보이지 않으니 그 곳을 나 선다 해도 집으로의 귀가는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