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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자의 이야기 (1)

부족한 사랑

by 블랙홀

새초롬하게 앉아있던 건너편 여자가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앞에 놓인 조니워커를 따라 홀짝 거렸다.

목 줄기로 넘어가는 소리가 딸그락 들리는 듯했다.

유난히 뽀얀 피부에 무표정이고 말이 없는 그 녀를 난 도도녀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녀는 지역을 대표하는 여객버스 운수업을 하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운수업이 사양 길이라지만 아버지의 문어발 사업으로 어려서부터 명품이 아니면 걸치지도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 특히 모친은 맏이인 그녀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읍 단위 시골이라 동기들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취업을 하러 고향을 떠났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이사로 있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유학생활을 할 뻔 했다.


다만 그렇게 등 떠밀리 듯 서울로 가야했던 건 고교 졸업하기 전 아버지 회사의 버스기사와 사랑에 빠졌고, 뒤늦게 알게 된 부모는 노발대발하다 못해 교육이란 핑계로 강제로 내 쫓을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사장 딸이 머슴이랑 연애질을 했으니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며 아버지는 그녀를 똑바로 보지 않고 광어처럼 곁눈질로 흘겨보곤 했다.


졸업이 한참 남았지만 돌연 유학을 가라는 부모의 성화에 가출을 감행할 수 없었다.

남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한 후 아이를 임신하고서야 집으로 돌아갔으니.


탄탄대로가 보장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사랑을 택했다니 '심프슨 부인'이 생각났다.


그녀를 찾던 가족들은 아이를 지우라 성화였지만 병원에 가기엔 넘 늦어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칸방에서 살림을 차렸고 예쁜 딸을 낳았다.


출산을 하자 방관하던 부모는 딸과 사위를 받아들였고, 결혼식대신 혼인신고만 한 후 작은 집도 마련해 줬다. 사실 아버지 몰래 엄마는 그녀를 찾아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고 안쓰러워했다.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생활이 삐걱 대기 시작한 건 장거리 운전으로 남편이 현지에서 묵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였다.

이 걸 버스기사들은 '도마리'라고 부른다.


시댁은 농사를 짓는 평범한 집안으로 남편은 시댁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고, 처가에선 눈에 안 차는 사위를 남 보듯 했으니 돈을 더 벌려면 장거리를 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집에 있는 그녀가 불안했는지 틈만 나면 전화를 했고 언제부터인가 통화가 안되면 짜증을 내며 의심을 했다.


아이가 어릴 땐 육아에 서툰 살림을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커갈수록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밖으로 도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그럴수록 남편의 불만은 늘어갔고, 가까이에 있는 첫가 집도 행사 때 외엔 가지 않았다. 간다 해도 장인과 처남들은 닭 보듯 했고 장모만 챙겨줘 불편했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친정에 가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살림을 해 본 적이 없어 가정을 이뤘어도 반찬은 친정에서 공수해 왔으니 남편이 장거리로 도마리를 하는 날엔 아이와 친정에 가서 눌러살았다.

그리고 주 특기인 게장요리를 했다.


그녀가 가장 잘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장이었다. 간장물을 다리지 않고 직접 담그는 게 짜지 않고 더 맛있단다.


간장게장은 일 년 열두 달 떨어진 적이 없지만 양념게장은 이삼일만 지나도 맛이 변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두 번째 여자가 게장 먹고 싶다며 입맛을 다시며 한마디 거들었다.


"게장은 간장이나 양념이나 모두 맛있지. 내 고향이 바닷가였잖아. 바다는 먹을 게 많아 좋아.

작은 새끼갈치를 꾸들꾸들 말린 것을 풀치라고 하는데 양념에 조리면 버릴 것도 없이 다 씹어먹을 수 있어. 풀치에 맛들 리면 비싸다는 먹갈치는 저리 가라야.


조개젓은 소금만 넣고 짭짤하게 담가 부뚜막에 놓았다가 풋고추 쫑쫑썰어 넣고 고춧가루 조금 넣어 무치면 그거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고, 겨울에 담근 어리 굴 젖은 어떻고... 밥도둑이지"


두 번 재 아지매는 먹는 게 진심인 듯 바다사랑에 입을 다물지 않았다.


도도녀는 기분이 상한다는 듯 아지매를 똑바로 쳐다보곤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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