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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상한 대화
두 번째 여자의 이야기(3)
유체이탈
by
블랙홀
May 15. 2025
"
바다가 보이는
둔턱에 있는 작은 집이지만
텃밭도 있고 든든한 남자가 곁에 있어 일을 그만뒀어도 심심하지 않았어.
"
"
이 삼일 만에 들어와 잡은
고기는 직판장으로 넘기고, 치래기를 집으로 들고 오면 남자를 위해 푸짐한 밥상을 마련했지
.
"
"양은냄비에 무를
깔고 고기를 올린 후 고춧가루와 고추장, 마늘을 듬뿍 넣고 그 위에 풋고추와 양파, 대파를 올려주면 밥 한 그릇
뚝딱할 만큼 꿀맛이었거든.
"
"하지만 쉐터공장에서 일하다 얻은 기침은 폐병으로 돌아가
괴롭혔고, 병원에선 담배를 끊으라고 성화를 했지만 담배는 죽어두 끊지 못하겠더라구.
"
"기침 끝에 노란 가래 덩어리가 나오고
호흡곤란과 불면증에 시달렸어.
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가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되는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했거든.
"
"약봉지는 점 점 늘어갔고 그럴수록 남자의 걱정은 잔소리로 이어졌지
.
병원을 다니고 약을 꾸준히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어. 워낙 오래된 고질병이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그 타령이었어.
"
예전엔 아이들의 폐렴도 무서웠지만 폐병은 옮긴다는 인식 때문에 폐병환자가 있다고 하면 발걸음도 뜸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 어릴 적 한 집에 살던 10대 후반의 쌍둥이 자매는 폐병에 걸려 학교도 못 가고 외출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볕 좋은 날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햇빛을 쐬러 나오면,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날 보고 희미한 웃음을 짓곤 했다.
학교에도 안 가고 비싼 초콜릿이나 바나나를 먹는 언니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근처엔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엄마 말을 어길정도로 난 배포가 없었다.
얼마 안 가 그 집 아주머니의 곡소리가 밤새 들렸고, 동생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두 달이 채 안가 언니도 떠났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자매가 떠난 그 집은 적막감으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했었다.
그때의 잊었던 기억이 여자의 얘기를 듣고 되살아났다.
몽골거리며 담배연기를 방울처럼 뿜어대며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무서운 건 쇄골이 피접 하게 몸이 말라가고 얼굴은 분칠을 한 것처럼 창백해졌지만 욕망은 더 커졌어
.
시도 때도 없이 치솟는 욕정으로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 곤혹스럽게
했거든
.
"
"나이는 있어도 몸을 쓰는 뱃사람이라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근육으로 뭉쳐진 구릿빛 등짝만 바라봐도 참을 수 없었어
"
"그날은 날씨가 너무 화창 해 고깃 배들이 포구를 떠나고, 남자의 배도 그 속에 묻어갈 때 오랫 만에 배웅을 했어.
남자는 들어가라 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 힘차게 움직였어.
"
"날이 좋다 해도 바닷바람 탓인지 집에 오니 혼자 끙끙거리기 시작했지.
평소와는 달리 기침이 유난히 심했고 호흡마저
가빠오더니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에 숨이 턱 턱 막혀 오더라구.
"
"자지러지게 기침하다 장이 꼬이는 아픔을 느꼈고 기침 끝에 아랫도리를 적실정도로 뭔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며 아득해졌어
.
한ㆍ두 번 있던 일이라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
몸이 가벼워진다고 느낀 순간
내가
헝클어진 파마머리, 홀쪽 한 볼,
화장을 안 해 기미가 그대로 보이는 삐쩍 마른 그녀가 눈에
있었다
.
꿈인가 싶어
깨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단다.
"어머? 나 왜 이래?
"
막이 쳐져 있는 것처럼
튕겨 나와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고, 잠은 깨지 같았다.
"꿈도 아닌데 뭔일이래유~~~
"
남편을
생각하면
어느새
그물질하는
주위를 빙글
거리고 있었고, 나 왔노라고 말을
걸어도 남편은
곁눈 한번 주지 않았단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고향 집 근처를 빙빙거리고 있었고, 다방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 언저리를 돌고 있었다. 신기하면서도 묘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하는 순간 이동을 하고 내 눈에는 보이지만 말을 해도 사람들은 못 보고 못 듣는다는 것을.
다시
남편을 찾아가니
낯익은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었다. 예전 전 남편을 보내던 자신처럼.
화사하다 못해 촌스럽게 화장을 한 째
철제 간이침대(?)에 누워있었고, 60대 아저씨는 쌀을 한 줌 입에 넣어주더니 탈지면으로 귀와 콧구멍을 막았다.
삼베옷
위로
일곱 마디
매듭은 하되 묶지는 않았
고
, 그 사이에 지폐를 몇 장
끼워
놓는 게
보였다.
잠시 뒤 하얀 종이꽃으로 장식한 관 안에 바르게 눕혔다. 꽃이 많아 아늑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검은 차량에 날 태우고 화장장으로
가고 있더라구.하아!! 뜨거운 건 싫은데... 배라묵을...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는데 날이 넘 화창해 눈물이 났어.
힐끗 돌아보니 남편과 딸아이들은 울고 있었어. 그 걸 보니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으니 그래도 난 잘
살았네~~~ 하고 위안을 받았지
.
불덩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몸이
산산조각 나듯 흩어지며 아파왔단다.
그러면서 위로 붕 뜨면서 그대로 솟구친다 했는데 희미한 안개 사이로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봤고, 전 남편과 엄마도 있었다고 했다. 반가움에 가까이 다가가니 좀 전 이들은 사라지고 오색 빛 터널 길이 여러 갈래 보여 당황스러웠단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카악거리며 여러 번 가래를 뱉어냈다.
여자의 얘기를 들으며 예전 지인의 장례식장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하얀 백지장 위에 그림을 그리듯 각인됐다.
병원은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한쪽에선 사람이 죽어나가고 한쪽에선 밥을 먹고 한쪽에선 잠을 자고.
승강기는 시신을 옮길 때도 사용되고, 일반인들이 움직일 때도 같은 승강기를 이용했다.
병원 장례식장은 대부분 반지하나 지하에 있다. 입원실로 배달되는 음식도 같은 층 식당에서 만드는 걸 보며 난 병원 밥을 쉽게 먹을 수 없었다.
특 1호, 2호 하는 장례식장은 문짝이 없고 자바라로 열고 닫는 것이 특이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빨래
줄을 걷고 창문이나 방문을 열어두는 건 조상님의 왕래를 위함이라고 할아버지는 알려주셨었다.
그래서 그런 가?
이승과 저승이 다르고 사망 직전과 직후에는 이승과 저승이란 길로 나뉘니 참으로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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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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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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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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