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결 순회교사로 한 달을 채 넘기지 않았을 때, 6차 공고가 날 때까지 왜 지원자가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갈등도 그때쯤이 최고조였으니.
교육청에서의 행정직과는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물에 기름돌 듯 크고 작게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교육현장에 대해 전혀 모르는 담당자의 출장명령이었다.
보결 순회가 어느 학교, 어느 학년이 되든 상관없이 수업을 하는 건 무리가 없었지만 전담이 맡고 있던 체육, 영어, 음악, 과학을 가르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초등에도 중등교사가 가장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체육, 영어, 음악 또는 과학 전담직이었다.
전담이 생기면서 일반초등교사들은 그런 과목을 가르치지 않은지 오래되어 시행착오를 할 수 있고 대부분 일반교사들의 수업과 전담의 수업이 호환되지 않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런 교육현장을 알 리 없으니 요청이 오면 그대로 출장을 가라 했고, 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현장얘기를 해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르치라면 수업 땜빵은 할 수 있지만 전공자가 아닌 일반 교사가 10여 과목을 다 잘할 순 없었다.
특히 영어, 체육만큼은 전문교육을 받은 교사가 가르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2%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교사로서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시행착오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 부분도 어려웠다.
다음은
열다섯 명 정도 한 사무실에서 파티션을 두른 채 함께 종일 붙어있는 건 견디기 어려웠다.
5급 사무관 급 부장아래 9급 두 명 그리고 나머진 7급이 대부분이었고, 교사 출신은 나와 장학사 한 명 밖에 없었다.
장학사는 돌봄 관련 일을 맡았는데 일주일에 하루만 자리를 지킬 뿐 출장으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자리배치가 사무실 안의 서열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맨 안쪽에 높은 파티션으로 빙 두른 곳에 5급 부장이 있었고, 그다음엔 7급 팀장 자리가, 그리고 그 앞에 장학사 자리가 있었다.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앞사람의 얼굴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사무실 에선 할 일이 없어 한 시간이 열 시간처럼 느리게 갔고 그렇다고 퇴근을 할 수도 없으니 어정쩡한 근무가 힘들기만 했다.
먹고 놀다 퇴근하면 좋지 않냐고???
사람은 바쁘게 몰두해야 하루가 잘 가지 할 일없이 자리를 지킨다는 건 고문 중의 고문이었다.
그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 난 일이 없어 인터넷을 뒤지다 그도 시들하면서 커피 잔을 들고 사무실 안을 빙 빙 돌아다녔고, 창가를 내다보다 다시 자리를 지키다 보면 소화도 안돼 가슴엔 음식물이 차곡차곡 쌓이는 듯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는 일반직에게 일을 도와주겠다 해도 일반 문서작성이 아닌 엑셀로 작업하는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엎드려 잘 수도 없고, 사무실 앞에 있는 여자휴게실 침대에 누워봐도 불안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난 좌불안석이었다.
할 일없이 애먼 커피만 하루 대여섯 잔을 마시곤 응급실에 갔다.
명치끝이 쓰리고 아파 진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난생처음 위염에 걸려 조직검사까지 할 정도였다.
10시쯤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후 2-3시경 아점을 먹는 생활을 5년 이상 하다 보니 12시 땡 치면 총알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안 먹겠다고 하기도 어렵고 혼자 빈 사무실에 있기도 머쓱해서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되는 생활의 연속도 힘들었다.
그들 틈에 있어도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돌기만 했다.
학교에선 안 그런데 왜 이럴까???
명퇴를 하기 전 교육원에 일 년 동안 근무 했을 때 느꼈던 그때와 똑같았다.
명퇴를 앞 당긴 것도 방학도 없이 일 년 열두 달 21일 연가에 의지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게 적응이 안 돼 고생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단기보결 순회기간제는 이런저런 사유로 정말 인기가 없었다.
인근 다른 3곳 지역교육청에서도 한 명을 구하지 못해 교사가 수업을 못 하면 같은 동료까지 해결해야 했지만 다행히 내가 속한 곳은 지역교육청은 바퀴 굴러가는 것처럼 잘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