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회 보결 교사의 애환(2)

by 블랙홀

적응력이 빠르고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것은 성격상 잘 맞았다.

그 지역은 고향도 아니고 학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판 낯선 곳으로 순회기간제를 하며 처음 땅을 밟은 곳이다.

근무를 한 적이 없으니 학교를 네비로 찍고 가는 것만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뒷 쪽 담벼락에서 네비가 꺼지면 출입구를 몰라 헤매다 그다음은 주자창을 몰라, 그다음은 교실을 몰라 헤매기 일쑤라서 일어나는 시간과 상관없이 헤매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그래도 찾지 못하면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교문이 어디에 있는지 주차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일일이 전화를 하는 건 근무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이었다. 멋 모르고 시작했지만 날마다 바뀌는 학교를 찾아다니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출장 하루 전 교감선생님에게 미리 말해 놓는다. 초행길이라 조금 늦더라도 수업엔 지장이 없을 테니 양해 부탁드린다고 하면 대부분은 이해를 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경력 교감은 오히려 조심 운전하라며 아량을 베풀었고 그럴 때면 미안해서라도 추월을 일삼지만, 초짜 교감은 올 때까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그럼 노땅 경력직 기간제는 잃을 것이 없으니 한 마디 튀어나온다.

" 차가 오는 대로 도착하지 헬리콥터를 타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사고 나면 책임지실 거예요?"

하아 이놈의 조동아리.


똥 씹은 얼굴을 하면 마지막 가이드라인까지 쳐 버린다.

" 전 장삿군은 아니지만 페스탈로치도 아니거든요"

아이고 야~야~ 고 입 다물지 못 하겠니? 말려봐도 말이 먼저 튀어나오니 입에 쟈크라도 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정해진 교실에서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는 게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양치컵부터 칫솔, 치약, 슬리퍼, 물컵, 커피까지 층층이 갖고 다녀야 하니 가방은 자꾸만 늘어났고 그만큼 짐도 늘어갔다.


종일 교실 콕하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알아서 퇴근하니 누구와 수다를 떨거나 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고 필요치 않았다.


종일 찾아오는 이도 없고, 찾아가는 일도 없는 독립적인 생활. 난 그게 더 편했다.

교육청처럼 열댓 명의 사람이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전화소리 꼼지락거리는 소리 모두를 듣고 있는 건 여전히 힘들었으니까.


가끔은 나이 어린 후배에게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괜찮은지 물어오면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어느 조직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자리까지 가려고 얼마나 노력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라서 그런 대우를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가끔씩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날 때는 존중해주지 않았다.

하는 행동을 보면 초짜 교감인지 초짜 교장인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 두 명의 교감이 티를 팍팍 냈다.

옆 반에 물어보니 예감처럼 초 짜라고 했다.


8시 30분부터 현관에서 날 기다리는 교장도 봤다.

그럼 죄송하다고 말하려 한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 빨리 오려고 했는데 앞 차가 가야 가지, 앞 차를 밀고 갈 수는 없잖아요??? 나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죠"


하지만 인간적인 분도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교사들 간식이라도 살 때는 내 몫까지 챙겨줬고, 출장이 끝날 땐 취미로 짠 것이라며 수세미를 한 보따리 준 교장샘은 정년이 다음 해 8월이라고 했다.



4개월 18일을 순회단기보결 교사로 지냈지만 대부분 교사들과 얽힐일은 없었다.


교사들은 그들이 자리를 비울 때 누군가 같은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가르쳐 주니 크게 마음 쫄 일도 없고, 학교에서도 월급이나 복무는 모두 처리해 주니 걱정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난 내게 주어진 일 만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순회보결 교사 학교근무 1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