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과해원 Apr 13. 2016

11. 천년 고목 '조몬스키'를 만나러 가다

- 일본 야쿠시마섬 여행 (3)

우리나라 제주도가 한라산을 비롯하여 산방산, 송악산 등 6개의 산을 품고 있다면 야쿠시마는 제주도보다 더 큰 산을 품고 있는 섬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제주도가 용암이 분출하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면 야쿠시마는 지질이 융기하여 솟은 섬이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의 규모는 제주도의 1/5정도이지만 산의 형세는 훨씬 장엄하고 유려하다. 게다가 '조몬스키'라고 불리는 오래된 삼나무가 일본의 조몬시대(신석기시대와 비슷한 시기적 명칭)를 뜻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듯 야쿠시마에 사는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불리우는 '조몬스키'는 태어난지 7000여 년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좌)미아노우라다케 봉우리까지 안내도 (우)숲에 진입한 일행들


이른 새벽 드디어 인간이 사는 구역과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구역을 넘어 직접 신의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에도 원시림에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우뚝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노랗게 비추니 이미 신을 만난 것 같이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우뚝 서 있는 나무들뿐만이 아니었다. 누워 있는 나무는 누워 있는 대로, 기울어져 옆 나무와 이어진 나무는 이어진 대로 사람들이 손길이 닿은 구석은 어깨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길목을 망치질로 하나하나 단단하게 받쳐주는 삼나무 발디딤목뿐이었다. 무성한 숲이 미야자키 히야오의 <원령공주>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누군가 손수 만들었을 삼나무 발 디딤목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숲에 진입하여 어둑어둑하게 자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삼나무들이 동이 트면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숲의 색을 궁금하게 여기는 이가 있을까? 노랗다고, 빨갛다고, 얼마나 신비한 색인지 모든 형언을 담는다해도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침 해를 받고 있는 숲


깊은 숲으로 들어갈수록 아침 해를 받아 매순간 다르게 반짝이는 나무들 사이를 걷는 기분. 또 올라갈수록 고도별로 달라지는 식생은 한라산을 생각나게 했다. 혼합림과 삼나무림 구역에는(해발 800~1,600m)은 일본삼나무 숲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이 삼나무들은 침엽수인 전나무류(fir), 가문비나무류(spruce), 측백나무류(cypress)와 다른 구과식물(conifers)들과 활엽수인 음나무류(kalopanax), 노각나무류(Japanese stewartia) 등에 혼합되어 나타났다.


혼합림 & 삼나무림



삼나무림 지역이 끝나면 1,600m 고지 주변에는 일본 최남단 고산습지인 하나노에고(Hananoego)습지와 코하나노에고(Kohananoego)습지가 있다. 이들 습지는 적어도 2,700년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이끼와 잔디 종이 성장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물줄기가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이 높은 곳에 습지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노에고 습지


고산 지대에 습지가 펼쳐진 모습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산의 꼭대기도 아닌 중턱에 습지가 펼쳐져 있다면 도대체 이 산은 얼마나 많은 물을 품고 있는 것일까? 물이 깊게 차 있지는 않지만 나무 다리가 없었더라면 풍덩! 생각만해도 아찔했다.



나무 다리를 계속해서 오르면 해발 1,600m 교목 라인 위쪽에서는 강한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관목이 타나났다. 또한 강한 바람 때문에 키가 작게 성장한 삼나무들도 볼 수 있었다. 해발 1800m 위에 지역은 작은 대나무(조릿대류) 종류의 목초지가 나타났다. 이곳엔 야쿠시마 진달래속(Yakushima rhododendron) 식물 군락과 노린재나무속 식물(Japanese andromeda)이 함께 나타났다. 눈에 익숙한 풍경이었다. 제주도 한라산 고지대에 피어 있는 진달래 군락과 조릿대 군락이 생각났다. 또 한라산에서 만날 수 있는 노루 대신 이곳에서는 사슴과 원숭이를 만날 수 있었다.                          


(좌)삼나무와 조릿대의 경계 (우)조릿대 군락 사이를 지나가는 사슴


신기했던 것은 정상으로부터 약 100미터 아래로 칼로 자른 듯이 조릿대 군락과 삼나무 군락이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삼나무가 살기 힘들어진 환경에 그 자리를 조릿대가 차지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천이가 진행되었다면 당연히 전이지대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 땅의 지질학적 특성이나 햇볕을 받는 사면의 환경 조건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그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 밟는 땅에서 그 땅에 사는 생명들에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이 생태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연구에 대한 의욕이 솟아나는 부분이었다. 한라산도 기후변화에 따른 고산식물의 피해에 대한 연구가 한창인데 야쿠시마와 같이 같은 기후대의 산림을 함께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릿대 군락이 나타난 것을 보면 산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예상대로 높은 암석이 연이어 나타났다. 철망이나 울타리 등 별다른 안전 장치없이 줄 하나만 있어 자칫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오를 수 있는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산에 오른다고 소박하게 생각하자면 이상할 게 없어보였다. 운무가 덮치고 가지고 있던 우비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거세 우비가 벗겨지고 머리가 다 젖었지만 올라갈수록 신이 났다. 미아노우라다케 봉우리가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좌) 90도 가까이 가파른 암석을 오르는 일행 (우) 젖은 나(?)



작은 오솔길 사이로 골짜기에 고여 있던 물이 졸졸 흐르듯 물이 흐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물이 흐르는 소리에 맞추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새어나왔다. "시냇물이 졸졸졸졸 고기들이 왔다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꾀꼴~" 조릿대를 훑고 간 바람이 살랑이고 멀리 보이는 암석과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길. 봉우리 정상에 크게 자리한 암석들이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고 신의 형상 같기도 했다.




미아노우라다케 정상에서 둘러본 모습


투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파란 하늘. 다시 투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바람. 다시, 바람 사이로 작게 난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서 있는 곳 아래에 자리한 구름들. 드디어 미아노우라다케봉 정상이었다. 정상에서 정상의 기쁨을 마음껏 만끽했다. 네 시간여를 걸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어느 한 발자국도 설레지 않던 순간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오래 바라고 보아 온 풍경이 현실 속 풍경이 맞는건지, 꿈은 아닌지 싶어서 내 손가락이 담긴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점심으로 챙겨 간 스틱 치즈를 한 입 베어물고 찍은 사진. 아무리 보아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내가 저기 저 풍경 속에 자리했었다니.




한참을 걸어서는 드디어 야쿠시마의 산신, 야쿠시마의 정령으로 불리우는 ‘조몬스키’ 삼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만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인지 나무 데크로 깔끔하게 삼나무를 보호해 두었다. 조몬 시대부터 살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조몬스키는 가까이서 안아볼 수는 없었지만 수천 년 동안 주름 잡힌 나무껍질과 창공을 향해 뻗은 거대한 나뭇가지를 하나 하나 눈으로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몬스키


세계에서 몇 번째로 높다던. 새로 지어진 잠실의 높은 빌딩을 보고 위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경외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의 천 년을 살았다는 조몬스키. 내가 바라보는 게 하나의 생명 뿐만이 아니라 천 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저절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새겨져서 조금 더 오래된 것들을 향한 마음을 키워가게 해달라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살면서 정말 가끔 마주하는 '위대한', '숭고한'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와 닿은 지금 이 순간이 조금 오래도록 머물게 해달라고. 


(좌) 윌슨 그루터기 전경 (우) 윌슨 그루터기 안에서 찍은 하늘


조금 더 걸어가서는 윌슨 박사가 살아서 윌슨 그루터기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오래된 삼나무의 나무 속 안에 들어가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나무가 한 생명을 다하고 더 오랜 시간이 흘러 비워진 나무의 속. 윌슨 그루터기에서 윌슨은 얼마나 안락했을까. 나무가 만들어놓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창이 하트 모양이라 괜시리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편안한 기운이었다.                     


야쿠시마 사람들이 일컫는 신의 영역에서 무사히 신을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조몬스키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는 이상하게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야쿠시마 역사민속 자료관(Yakushima Towm History and Folk Museum)을 찾았다. 조몬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야쿠시마의 생활과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자료관으로 실제 농기구들과 어부들의 배 등 야쿠시마 사람들만의 문화를 자세히 소개해주었다. 야쿠시마 주민들은 사찰 또는 신사에서 신께 기도드리고 그에 응답 받았을 때에만 다른 마을 혹은 섬 주위에 갈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Shimamawari” 인데 사람들이 수시로 다른 커뮤니티를 방문하기 위하여 이런 기회를 이용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낯선 섬에서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혹은 자연과 관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야쿠시마 섬여행기는 (1)편부터 (4)편까지 시리즈로 진행되오니 이어서 읽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10.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리는 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