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점 아저씨를 만나다
안경점에 들어섰다. 십여 년 만이다. 안경점 특유의 반짝거림으로 눈이 부시다. 실내 벽을 둘러싼 거울, 안경 디스플레이관과 안경알, 은빛 안경테가 서로를 마주하고 반사하여 반짝거리는 세상. 나 여기 있소를 연발하는.
“아저씨 저 알아보시겠어요?”
“그럼.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꼬마가 아가씨가 다 되었구나. 아저씨는 이제 거의 할아버지가 다 되었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경점을 시작한지 삼십 년이 넘었구나. 꼬마 아가씨가 이 아저씨의 거의 처음 손님이었는데, 이제 아저씨는 강의도 하러 다니고 안경점에 자주 나오지 못할 만큼 바쁘게 지낸단다.”
십여 년 만이다. 십여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걸까? 오랜만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우리는 그때처럼 나의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았는지 간단한 시력검사를 하기로 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무늬의 열기구가 크게 띄어져있는 곳을 바라본다. 열기구 머리 부분에 있는 풍선이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것과 같이 내 눈안의 홍채가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자라면서 이따금 한 번씩 보아오던 풍경이다. 시력이 더 나빠졌으면 어떡하지. 두꺼운 안경을 쓰게 되면 어떡하지,하는 아주 오래된 걱정이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온다. 나는 몸집이 커져서 그곳에 앉아 있는데 작은 몸집의 내가 어디에서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이 왠지 모르게 아련하다.
이마와 턱을 잘 붙이고, 긴장하지 말고, 조금만 참고 눈을 크게, 눈을 크게 떠보렴.
어릴 때 듣던 아저씨 목소리 그대로다. 자상하고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눈을 크게 떠서인지, 아저씨 목소리 때문인지 갑자기 눈이 시려워진다. 얇은 눈물이 눈가를 적신다.
시력 검사가 끝나고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어떤 안부보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나였다. 곁에 계셔주셔서,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하다는 것. 쑥스러운 마음에 그 말을 전하지는 못하고 대신
“건강해 보이셔서 좋아요.” 라고 웃으며 말했더니 아저씨는
“이제 시집갈 일만 남았네. 그동안 관리 잘 해 와서 시력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야. 네가 이렇게 잘 컸다니 아저씨는 얼마나 기쁜지 몰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이 왠지 네가 어디에 있든, 얼마나 외롭든,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단다.
우리는 서로 먼 우주를 통과해서 만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다. 몇년 만에 만난 안경점 아저씨와의 만남을 멀리 우주를 통과해 온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관계가 있다. 가끔씩 그 존재를 향해 가는 것이 삶 속의 여행인 것도 같다. 여행이 일상에서는 숨어서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지점에서 마주했을 때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는 게 반가운 것이라면.
함께 지내 온,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이 쌓여서 인가. 안경점 문을 닫고 나오는데 멀리서 바람이 훅 불어오는 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동반자라고 해서 꼭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반자라면 안경점 아저씨 같이, 그때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안경점의 안경들처럼 서로를 비춰주며. ‘나 여기 있소’라고 조용히 반짝이며.
지금도 나 이렇게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여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