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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Apr 30. 2020

취준생 10주년 기념록;
JOB 마이너리티리포트

#11. 내 아지트를 소개합니다.(1) 울기 좋은 곳

취준생 10주년 기념록;JOB 마이너리티리포트 

: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취업과 이직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


#11. 내 아지트를 소개합니다.(1) 울기 좋은 곳 

취준생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아무도 안 물어보겠지만…) 나는 ‘아지트’라고 대답해야지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다. 

정처 없이, 소속 없이 부유하는 취준생에게는 특히 나만의 아지트가 정말 중요하다. 사실 나는 아지트가 좀 많은 편인데 그게 그럼 무슨 아지트냐! 고 한다면 아지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사실 아지트가 많다는 것은 얼마나 울 일이 많았다는 건지 알아요? 라고 발끈하며 대꾸하고 싶군요….ㅎㅎ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의미있는 아지트 몇 군데를 소개해보고자 하는데, 또 너무 다 공유하면 우리가 언젠가 어디에서 마주칠 수도 있으니….하긴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발견한 듯한 아지트여도 결국 그건 이미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남겨져 있는 공간인거니까. 그러니 우리 혹시…누군가를 마주쳐도, 그 누군가가 마치 나와 같은 취준생임을 직감적으로 알더라도 서로 아는 체 말기로 해요…? 

 

취준생에게 가장 필요한 곳 중 하나가 ‘울기 좋은 곳’이라는게 어쩐지 슬프지만 

내 아지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 하는 곳이 바로 울기 좋은 곳이다. 

울 일이 많은 취준생이지만, 집에서는 잘 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억지로 참자니 이러다 홧병 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그러니 내게는 소리내서 엉엉 까지는 아니어도 마음 속 울음을 조금이나마 내뱉고 덜어낼 수 있는 곳이 꼭 필요했다. 

 

내가 가장 잘 가(서 눈물을 흘리)는 곳은 ‘궁’이다. 특히 덕수궁과 창경궁. 

어릴때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궁을 산책했기 때문에 궁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취준생의 입장에서 특히 좋은 이유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랄까. 

한참을 앉아 있어도, 그러다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도, 그 눈물이 차올라 훅.하고

울음으로 뱉어내도 궁 깊숙한 곳에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혹 누가 있더라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으며, 

울음소리는 나무를 스치며 부는 바람소리, 늘 할 얘기가 많은 새들의 목소리에 

묻히기도 한다. 

 

봄과 가을에는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원하는 만큼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있고, 

겨울에는 날이 추우니 관람객이 현저히 적어서, 오롯이 혼자 내 슬픔을 집중하고

들여다볼 수 있다. 

여름에는 울창하고 푸른 나무들의 품에 숨어 바람을 맞으며 잠깐씩 조는 사치를 부릴 수도 있는 내게는 완벽한 아지트다. 

 

입장료는 1천원~3천원으로 저렴하고, 아예 없는 경우도 있으며(경희궁), 

여행 주간에는 50% 할인도 한다. 

오전9시면 늘 열려 있고, 

덕수궁과 창경궁의 경우에는 밤9시까지 개방하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지만 배가 고프니까 그러진 못하는 걸로….

 

+개인적으로 

한 겨울 눈이 펑펑 오는 날 아침의 창경궁 숭문당

늦 여름 해가 늦게 지는 저녁6시에서 7시 사이의 덕수궁 분수대앞 벤치는

정말로 울기 좋답니다. (+덕수궁 앞에서 와플을 사간다면, 금상첨화!

울다가 와플을 먹냐고요?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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