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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May 09. 2020

취준생 10주년 기념록;
JOB 마이너리티리포트

#14.나의 SSAT이야기

취준생 10주년 기념록;JOB 마이너리티리포트 

: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취업과 이직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


#15.나의 SSAT이야기

나는 SSAT를 5번 합격했다. 정말이다.(아니 어쩐지 안믿으실 것 같아서….) 

삼성그룹의 전사적 채용 SSAT는 2번 합격했고, 삼성의 계열사들에서 본 SSAT에 3번 합격했다. 그러면 그냥 2번 합격했다고 해야 할까… 근데 뭐 어쨌든 다 다른 해에 치른 시험이고 괜히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5번이라고 하겠다!!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쓰지 않으려 했으나 혹시 또 누군가가 팩트체크를 할까봐 소심해진 마음에 그만. 

어쨌든 정말로. SSAT는 치르기만 하면 합격을 하긴했다. 


SSAT를 놓치다.

인적성검사에 대해 아예 무지했던 첫번째 인적성검사날. 

삼성에서 인턴을 채용하고 있었고, 인턴의 1차 관문이 인적성검사였다. 

당시 패기 있게 한 계열사에 지원한 내가 인적성검사를 보러 가야 할 곳은 가락동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서울의 북쪽에 살던 나는 잠실 너머를 그렇게 자주 갈 일이 없었는데, 특히 가락동은 정말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다. 이때가 2008년이었는데, 불과 10여년 전이지만 

그때에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등은 아예 없었다. 그러니까 여행에 가서도 종이 지도를 들고 움직이던 시절…(대체 왜 이렇게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거죠? 여담이지만 나는 지도를 들고 여행을 해봤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대체 왜….?) 

우리집에서 가락동까지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못하고 우선 멀다는 것만 알았고, 그때는 3호선 가락시장역이 아직 생기기 전이라, 4호선을 타고 2호선 동대문운동장(당시 역 명)에서 내려서 잠실까지 간 다음 거기서 8호선으로 갈아타 가락시장 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잠실역에서 8호선을 갈아타는 것이 그렇게 긴 줄 몰랐었다. 

잠실역에 도착했을 때 난 알았다.  망했구나… 

지금도 생생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8호선 환승 통로. 정말 다시는 8호선을 타지 않겠다고 괜히 욕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겨우 갈아타서 가락시장역에 도착했으나, 학교가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결국 지각을 했고(정말 이런 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닫힌 문 앞에서 2번 정도 애원한 다음 돌아 나와야 했다. 

정말 너무 창피했고, 내 자신이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그렇네.. 대체 왜 그랬을까) 

무지한 내가 태평했던 내가 황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혹시 이 때 지각을 하지 않아 SSAT를 본 뒤 합격해서 인턴을 하고, 정직원 전환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는 미련을 가져본 적 당연히 있고요….) 

처음 와보는 곳에 덩그러니 남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모른채 빙빙 돌았다. 

친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힝힝 ㅠㅠ 했지만 (안창피했냐!!) 그래서 정말 울고 싶었지만 어찌되었든 어쩔 수 없는 것. 

그렇게 내 첫번째 SSAT는 날아갔다. 

일생에 몇 번 못 보는 SSAT인줄 그땐 몰랐지. 

내가 SSAT를 봤다고 해도 붙었을지 의문이고 붙었다해도 면접까지 갔을지 의문이며, 면접에 합격했다고해도 인턴생활 중 때려치지 않았을지, 혹은 잘리진 않았을지 의문이고, 인턴을 끝까지 했어도 정직원 합격이 됐을지 미지수지만 어찌되었든 1%라도 그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과 아예 그 가능성을 내 손으로 직접 차단했다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래. 나는 그 뒤로 정말 한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그 후로 10년 동안은. 그러니 큰 교훈이 된거였으려나. 


SSAT는 특이한 애들을 합격시키나봐

공채 시즌이 시작됐다. 인턴이 아니라 이제 정말 정규직. 그리고 SSAT는 늘 선두주자다. 당시 삼성의 채용 특성 상 서류는 누구나 지원가능했고, 지원 방식도 다른 회사들보다 간단했다. 서류를 지원한 모든 사람은 SSAT를 볼 수 있고, SSAT를 통해 면접 대상자를 선발했다. 여기서 특이점이 면접 대상자에 뽑히면 어마어마하던 경쟁률이 2.5~3:1 로 확 줄어든다는 것. 그래서 SSAT에 합격하면 그래도 30%는 합격 문턱에 다다른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름 방학동안 유일하게 한 스터디는 절친+같은과 선배+다른과 3명이 함께 만든 SSAT스터디였고, 나는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SSAT책을 들고 다니며 나름 공부했다. 그거라도 했지만 솔직히 정말 이런 문제가 인적성 검사에 나온다고? 하는 질문들이 많아 처음엔 황당했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공간능력을 테스트하는 도형문제부터 내가 즐거워하는 통계분석이나 지문이 긴 문항, 상식 문항 들까지. 뭐 이런 시험으로 면접자를 뽑나 했지만 내가 달리 할말이 있었으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냥 그 문제집 한권을 풀고 공부하는 것 뿐. 하지만 그 책을 미처 다 보기도 전에 SSAT를 보게 되었다. 

SSAT시험 전날이 생각난다. 토요일 오후 그 당시만 아주 잠깐 친했던 학교 선배를 불러내 이해되지 않는 수학 문제들을 함께 풀었다. 돈까스를 먹었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오잉….. 왜 이런 것만 기억이 나는 거지….)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열심히 공부를 안했….

드디어 일요일, 정해진 시험장으로 가는 길, 그런 광경은 그때는 처음이었다. 손에 SSAT책을 한권 씩 들고 정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책에 코를 묻은 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기가 죽었다. 나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1교시는 정말 막 풀었다. 그냥 내가 아는 것은 다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문제 순서에 상관없이 내가 아는 것부터 먼저 풀었다. (물론 불확실해서 별표친게 더 많긴 했지만…)

2교시 인성검사는 의외로 오래 걸렸다. 

왜냐하면 평소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야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종종 불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던가 

‘나는 종종 물건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질문들은 태어나서 처음 고민해본 문장이었다. (이건 처음이라 그랬던거고 나중에는 정말 기계처럼 답을 체크한 뒤 엎드려서 잠을 잤답니다…) 

제일 황당했던 질문을 뽑자면… ‘나는 우리 나라에서 삼성이 최고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질문이었는데 정말 피식 웃을뻔했다. 뭐 이런 질문이 다있냐….(혹시 지금도 이런가요? 제가 요즘 SSAT는 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제일 약올랐던 질문은 ‘나는 가끔 신문을 본다’ 였다.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었으나, 몇 문항 뒤에 ‘나는 신문을 자주 보지는 않는 편이다.’ 이렇게 문장을 교묘히 바꿔 놓은 게 아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말장난인데!!!!!!!!!! 

이건 비단 SSAT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 문항의 문제점은, 안 그래도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한 지원자들을 순간 헷갈리게 만들어서 실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그게 의도였겠지만) 이 문제 하나 잘못 체크했다고 당락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실수를 한 순간 컴퓨터 수성 사인펜으로 이미 체크해둔 부분을 얼른 지워야 하고 그건 다급함과 조급함으로 이어져 멘탈을 흔든다. 혹은 다 끝나고 알게 되었을 경우 발표전은 당연하고, 발표 후, 불합격일 경우에는 오랜 시간 얼마나 곱씹고 후회하게 되는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얄밉… 

인성검사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 세번 정도 답안지와 문제지의 마킹을 체크하고 교실을 한바퀴 둘러본다. 괜히 수능시험을 보던 열아홉 추운 겨울날이 떠오른다. 날씨보다 더 차가웠던 마음의 두려움, 그리고 그때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음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수 많은 경쟁자들과 한 곳에 모여 매번 정답이 없는 선택을 해야할 지 몰랐던 그 날이. 여기 모인 우리는 또 언제 어디서 서로의 탈락을 바라며 다시 만나게 될까. 그때 마감종이 울린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고,  

마치 언제 앉아 있었냐는 듯, 의자를 힘껏 밀고 일어나 우르르 휴대폰을 받아 돌아가는 지원자들을 보며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이미 시험에 대해서는 아무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는 SSAT에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그 당시에는 모바일 환경이 발달되지 않아 폰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답니다….아 나 언제 이렇게 늙었찌… 이 책 아무리 생각해도 내 또래는 안읽을 것 같은데… 공감을 못받겠군요) 

지하철에서 내려 지하철 역사 안에 설치된 컴퓨터에 접속해 손을 덜덜 떨며 확인했었다. 

합격. (이 때 받은 합격을 그 이후 한 동안은 쭉 받지 못할 걸 이때 알았어야 하는데…) 


우리 과에서는 선배 1명과 나 뿐이었다. 

다들 놀라며 한마디씩 던졌다. ‘SSAT 약간 특이한 애들 뽑는 거야? ‘

그렇다. 나는 아무도 SSAT에 합격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 난 적은 한번도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인 나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그 다음 학기에 다시 SSAT를 본다.

(그렇죠. 면접에 떨어진거죠. 2.5:1….이었는데….).


두번째 SSAT의 기억은 좀 더 선명하다. 나는 당연히! 지원회사를 바꾸었고(이것이 중요하다는 걸 또 두번째 되어서야 그나마 알았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너무 준비해서 메르스가 있덩 당시, 마스크도 굳이 2개 가져감.) 시험을 봤다. 

나는 또 합격했다. 

‘오 하느님 저는 역시 SSAT형 인간인건가요?’ 

‘역시 저는 삼성이 찾는 그런, 어떤 유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인재상인건가요?’ 

‘이건 역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겠죠? 저는 면접에 붙겠죠?’ 

이런 망상에 빠져 결국 다시 면접을 보게 됐지만… (그래요 난…. 난 그래요….) 



그 후 여러 계열사의 SSAT들을 보며 나는 계속 합격했지만, 면접에서는 한 곳을 빼곤 떨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삼성의 인재상은 전혀 아니었거나, SSAT를 볼 때의 나만 삼성형 인재였거나 사실 가장 큰 확률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겠지. 

(면접을 잘 못봤다는 말을 이렇게 구구절절 할…일….?)


어쨌든, 혹시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아주 조심스럽게 인적성검사에 대한 어쩌면 쓸모있을 수도 있는 조언을 몇가지 해보는 걸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1교시는 무조건 자신 있는 영역부터, 아는 문제부터, 그리고 품이 많이 드는 문제부터 푼다. 또한 공간, 추리 영역 등은 문제 유형이나 해결 방법을 눈에 많이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꼭 문제집을 살 필요는 없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문제를 풀어보면 좋다. 

하지만 상식이나 언어 등의 다른 영역은 특별한 노하우는 알려드릴 수가 없.. 왜냐면…특별한 노하우는 없거든요… ㅠㅠ 내가 푼 건 문제집 1권이었고, 그 외에는 평소에 야금 야금 모아둔 부피가 얇은 잡지식 같은 것들로 연명했었기 떄문에…


2교시 인성검사는 만약 정말 합격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그것만이 목표라면 

‘진짜 나’를 조금 버려야 한다. 

인성검사를 몇 번 보다 보면 주로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나를 만든다. 책임감이 강하고, 종종 신문을 읽으며,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인성검사용 나를 만든다. 그리고 인성검사 전 최면을 건다. 반복해서 계속 내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래야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인성검사에서, 문장을 조금씩 바꿔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문항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가짜의 나로 인성검사를 합격하는 게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어쩄든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면접의 기회가 인성검사를 통과해야만 주어지는 거라고 변명해봅니다. 

면접에서 유독 자신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분들이라면(자신이 그런 사람인지 면접에 

가봐야만 알 수 있기도 하죠) 우선 인적성검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중요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 본인의 선택입니다! 

아 물론… S그룹은 

인성검사용 나’와 ‘진짜 나’가 거의 정 반대인 저를 면접에서 바로 꿰뚫어 보시던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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