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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May 25. 2020

취준생 10주년 기념록;
JOB 마이너리티리포트

#16. 취준은 잘못이 아니야.

취준생 10주년 기념록;JOB 마이너리티리포트 

: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취업과 이직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


#16. 취준은 잘못이 아니야.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친구와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브런치 식당에서 유행한다는 아보카도샌드위치와 오물렛을 먹고 온 어느 날, 사진을 SNS에 올리려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이거 올리면 취업한 줄 알려나?’ 혹은 ‘백순데 이런데서 밥먹는다고 누가 뭐라 할려나?’ 

SNS의 친구들은 실제로 만나 얼굴을 보고 밥을 같이 먹는 친구들 보다 좀 더 가볍고 얕게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평소에 가깝지 않은 사람들도 속해 있고, 굳이 내 근황을 알리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도 있으므로(비공개를 너무 늦게 알았던 과거의 나…),

어쩐지 취준생이 이런 곳에 갔다는 게 마냥 철없어 보일까싶어 망설인 적이 있다. 

 

취준생 초기의 나는 분명 그랬다. 

어쩐지 부끄러웠고, 죄를 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합격 소식을 들으면 엄마에게 제일 먼저 미안했고, 응원해준 친구들에게도 미안했고, 더 나아가 취준 기간이 길어지자 마치 나는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사람인 것처럼, 누군가와 웃고 떠들고, 내 취미생활을 하는 것, 심지어 밤늦게 잠드는 것 까지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고, 숨고 싶었다. 

낮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기보다는 땅을 보거나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고, 

이력서를 쓰느라 초췌한 몰골로 카페에 있다 우연히 그 근처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대학 동기나 선후배들을 만날 때에는 하루를 망칠만큼 마음이 흔들려서 최대한 그 카페나 동네를 피해 다녔다. 철저하게 점심시간을 피한 시간에 밥을 먹다가도 누군가 나를 발견할까봐(아니 대체 왜 누가…ㅎㅎ) 누가 쫓아오듯이 빠르게 먹기도 했고, 카페에서 이력서를 쓸 때에는 노트북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도록 모니터를 가리며 채용공고를 뒤졌다. 

쭉 적어보니 아 정말 내가 심각했었구나 생각이 들지만, 그 때에는, 그리고 어쩌면 아직도 종종 인식하지 않는 어떤 찰나에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진 날 느낄때가 있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나는 전-혀 유명하지도 않은 내 개인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도 특정인이 아닌, 그저 누군지 모르는 어떤 존재가 나에 대해 쏟을 비난을 상상하며 괴로워했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취준생이라 제일 힘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취준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지만 만약 미안해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내가 되어야 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다. 

취준생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 취준생이라는 그 사실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이나,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잘못하는 일인 거지. 

 

안다. 나도 잘 안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께 빨리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아직도 손을 벌리는 것이 죄송하다는 것, 밥을 같이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모두 눈치가 보인다는 것, 그러고 싶지 않아도,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갖고 싶지 않아도, 늘 그래와야했던,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는 걸. 

 

나도 그랬으니까.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는 학창시절부터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물론 엄마는 정 반대로 생각하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성적이 내 맘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이, 예쁜 옷을 갖고 싶은 것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모두 잘못처럼 느껴졌다. 티비에서 나보다 더 힘든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다큐를 볼 때마다 그 죄책감과 자괴감은 더욱 심해졌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내게 쌓인 죄책감들은 내 안의 나를 더 작고 볼품없이, 뒤틀리게 만들었고, 종종 원망과 분노로 변해 내 삶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그리고 취준생의 시기에 그 칼은 더 자주 눈 앞에 나타났다.

 

이런 내가 뭐라고 취준이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냐며 묻는다면, 

그 시간을 죄책감으로 보낸 내가 지금 알게 된 건 

죄책감을 갖는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희생을 만들고, 그 희생은 원망을 만든다.(물론, 내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런 원망은 쉽게 지워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너무너무 속상한 일이지만, '내가 이런 것까지 포기했으니 언젠가 이 모든 걸 보상받은 날이 올거야' 같은 행복 회로가 현실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계속 모든 일에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_

 

죄책감으로 움츠러드는 그 시간을, 자괴감에 빠져 있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를

내게 쏟아야 한다. 삶의 방향을 내게로 돌려보도록 애는 써보아야 한다. 

생각보다 삶의 방향이 오로지 내게 향하는 시간이 우리의 삶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자꾸 잊곤한다. 나도 모르는 새 한번도 내 삶의 방향이 나를 향하지 못했다는 걸 아주 한참 뒤에 알게 된다면....

그럼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_

취업만 해결하면 그 후부터는 내가 주인인 삶을 살겠어 라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월급은 한정되어 있고,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마음과 욕망에만 집중할 수 없다. 거기에 혹시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삶의 방향은 당연하게도 단숨에 내게서 멀어진다. 아무리 중심을 잡고 싶어도 자꾸만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곳곳에 나타나 일상을 휘젓고, 그것은 또 죄책감을 갖게 되는 대상을 늘리고 만다. 

 

죄책감을 더는 것이 어렵다면 의식적으로라도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고 애써보자. 왜 이렇게 애써야 하는 일이 많은지, 그냥 쉽게 쉽게 사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내 삶은 왜이렇게 매번 더딘지 원망스럽고 안쓰럽지만, 그래도 애써보자.

죄책감이 나를 더 나아가게 하거나, 더 빨리 이 어둠 속에서 내보내주지는 않으니까. 

누군가가(가족일 지라도) 말과 행동으로 나를 비난하고, 내게 죄책감을 준다해도. 내게 즐거움을 주는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자.

아이돌을 좋아하고, 맛집을 찾아 다니고, 종일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자전거를 타고, 게임을 하는 것에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작은 것이어도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은 나를, 삶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를 대견해하자. 그리고 그 에너지로 주어진 삶을 잘 살아보자. 

취준생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으로,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자 우리. 

 

+이 글은 절대 취준생으로 취업에 대한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즐거움만 좇는 분들에게 바치는 글이 아닙니다!(방금 드라마를 몰아서 10시간 본 저 같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는 게 좀 필요하기도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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