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당연히, 소치올림픽에 갈 줄 알았다. 야구중계팀 막내였고 우리 회사에서 쇼트트랙 중계를 한다고 했고 우리 팀이 가서 중계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 올림픽이라니. 할아버지 할머니랑 함께 보던 그 수많은 올림픽에 내가 가는 거야? 정말? 생각만으로도 꽤 신나는 일이었다. 현장에서 만나는 올림픽은 어떤 느낌일까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꿈이 없었다. 대학교 3학년 즈음되어 취직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아빠는 왜 하고 싶은 게 없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게 뭐, 꼭 있어야 하나?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엔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농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시력이 나빠서 넌 안 된다고 했다. 손지창은 고글 쓰고선 잘만 하더만. 거기에 일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농구부 있는 학교가 근처에 없어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었다. 거기까지가 끝. 꿈은 그래서, 없었다. 학교에서 물어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왜 물어보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때 인기 많은 직업을 적었다. 조금 더 크고 나선, ‘좋은 아빠’가 꿈이라고 했고. ‘좋은 아빠’의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주관적 기준으로는, 달나라 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라서 꿈이라 해도 되겠다 싶어서. 그리하여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다짐했다. 꿈은 없지만, 뭘 하게 되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니 뭘 하게 될지 모르지만, 준비를 착실히 해놓자. (그래야 아빠한테 욕을 덜 먹을 거 같으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소치올림픽을 하긴 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쇼트트랙 중계를 맡아서 하긴 하는데. 야구중계팀이 중심이 되어서 가긴 하는데. 나는 못 갈 거 같다는 거다. 왜? 아니, 대체 왜? 나랑 같은 팀 모든 사람이 가는데 왜 나만? 나 대신 동기인 다른 친구가 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중계팀도 아닌데? 왜? 궁금했다. 못 가는 건 못 가는 거라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메인 PD 선배는 눈치가 보였는지 속 시원하게 말을 해주지 않았다. 빙빙 돌려 말씀을 하시더니 마지막에 한 마디. 너 토익 성적이 안 좋니? …. 네?
꿈, 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선 장래희망이라는 게 있다. 커서 하고 싶은 거. 그러니까, 뭐 하면서 돈 벌고 싶니 같은 거. 근데 여기에서도 딜레마가 있다. 뭘 하면서 꼭 돈을 벌어야 하나. 하고 싶은 거랑 돈을 벌 수 있는 거랑은 다를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세세하게 들어가면 장래희망과 돈 벌면서 살 수 있는, 하고 싶은 직업으로 나눌 수 있겠다. 꿈은, 이거랑 상관없는 초월적인 거. 예를 들어 우주 평화. 하늘을 날기. 물 위를 걷기 이런 게 꿈이지. 아빠가, 보통 대부분의 어른이 물어보는 건 결국 꿈도, 장래희망도 아니고 그냥 뭐 먹고 살 거냐는 이야기니까. 학교에서 묻는 것도 그 이유일 테고. 그래야 진로를 설정할 수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뭐 먹고살지는 모르겠고 무엇이든 하면서 먹고살겠습니다 라는 결론을 내린 거다. 나는. 그게 회사에 입사해서도 그랬다. 어느 무엇을 하고 싶은 건 없는데요. 그냥 잘하고 싶어요. 뭘 해도 뭘 시켜도 준비를 잘 해서 잘 배우고 잘 하겠습니다. 이런 성실한 일꾼 같으니.
그런데 거기에 스크래치가 난 거다. 꿈은 없지만 준비는 잘해놓는다며. 근데 토익 성적이 안 좋아서 소치에 못 가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그게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소치를 못 가는 게 열 받는 게 아니고, 나 대신 동기가 가서 질투가 나는 게 아니고, 영어를 좀 잘해야 하는 데 그걸 토익 성적으로 평가해서 보낸다는 게 화가 나는 게, 아니지 않고 화가 좀 났지. 이건 좀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누가 토익 성적으로 영어 잘한다는 걸 평가합니까. 그렇지만 회사에선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 입사 때 제출한 성적으로 정했다는데,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났다.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나에게 온, 경험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게. 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데, 나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게, 나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많이.
그래서 염색을 했다. 왜 결론이 이렇게 되었냐면, 기분 전환을 하려고. 정확히는 탈색. 무한도전 보다가 노홍철 머리 색깔이 예쁘길래. 머리를 할 때가 되어서 갔다가. 이런 머리 해볼까요 했다가. 아주 밝은 하얀색에 가까운 노란색 머리가 되었다. 그렇게 했더니 기분 전환이 아주, 하나도 되지 않았다. 누가 머리 하면 기분 괜찮아진다고 그랬냐. 다음날 출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전긍긍하며 있었다. 방송국이고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된 신입사원이 머리를 탈색하고 회사에 나가는 거다. 오 지쟈스.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한 선배는 “야 너가 동방신기냐!”라고 외쳤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역시나 반응이, 반반으로 갈렸다. PD인데 뭐가 문제냐파와 그래도 회사원인데 신입이 어디서파로. 그리고 문제는, 그날이 팀 전체회의하는 날이었다는 거.
그렇게 소치에 다녀왔다. 왜 또 결론이 이렇게 되었냐면, 머리색을 바꿔서는 아니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올림픽엔 세계를 대상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중계팀과 국내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팀으로 나눠서 출장을 가는데, 후자로 가게 된 것이다. 전체회의시간에 그렇게 명단을 불러주는데 등에 땀이 주르륵. 물론, 나의 기준에 모자랐으니, 열이 받았으니, 후회는 없다! 였지만 아. 뭐라 명분이 없네? 머리 왜?라고 물어보면 소치에 못 가서요 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애매…하게 된 거다. 속을 알 길 없는 선배들은 회의 이후에도 계속 머리머리머리 왜왜왜왜왜라고 물어봤고, 그리하여 나의 대답은 소치올림픽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 기원이…라고……… 아. 구차하다.
소치의 바다, 였다.
결국 그날 밤에 선배들한테 끌려갔다. 너 무슨 힘든 일 있니. 아니요. 그리고 PD보다 회사원임을 더 강조하는 선배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원상복귀시키자. 네. 물론 호락호락하게 들은 건 아니고 톤만 살짝 다운했지만. 그게, 7년 전 여름이었다. 모든 게 쉽지 않았던,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신입 사원이었던 시절. 그때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