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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Sep 11. 2020

결혼해 살 집을 구해보시오.

부디 객관식으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단연코, 어려웠다.


결혼 준비는 대체로 예상대로 흘러가 힘든 지점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 있는 나와 울산에 있는 배우자의 거리도 괜찮았고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예산도 계산에 맞춰 사용하면 되었다. 우리는 싸우지 않았고 행복했으며 심지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줘터졌다.) 그렇지만,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생각해보면 청첩장을 돌리는 것과 함께 가장 까다로운 일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기껏해야 옷이나 비싸면 컴퓨터 정도 사봤지 몇 억짜리 물건을 언제 구매(라고 쓰지만 정확히는 빌리는)한 적 있었어야지. 딱히 어렸을 때 월세고 뭐고 구해본 적도 없었던 터라 집을 알아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뭔가, 쑥스럽고 뭔가, 어색하고 뭔가, 진 것 같고 그랬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혼자서 부동산에 갔다. 2017년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몇 날 며칠을 네이버 부동산에서 온갖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생각한 최적의 동네로 향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걸음은 무거웠다. 옷가게에서 점원이 말 거는 것도 불편해하는 성격이라 잘 모르는 곳에 처음 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너무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이었다.


저기. 집 알아보러 왔는데요?  

아 예. 전세 끼고?

네? 아..네 전세.


뭐야. 그러고서 내가 생각한 평수의 집 금액을 듣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싼 것이었다! 아. 안 그래도 불편한데 안 그래도 더운데 아무리 시원한 에어컨을 튼 부동산이어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 뭐야 왜 비싸. 역시 인터넷엔 허위 매물이 그렇게 많다더니. 으휴. 다시 알아봐야 하나. 두서너 단지의 부동산을 다녀봐도 다 비슷했다. 그때의 참담함이란. 그리고 며칠 뒤에야 문제를 알게 되었다. 원인은 ‘전세 끼고’에 있었던 거다. 그게 뭔 말인지도 몰라서 그냥 네, 전세라고 대답한 탓에 부동산 사장님들은 나를 갭투자자로 알고 매매가를 말한 것이었다. 아니 제가 신혼부부 살 집 구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바로 그 끼고 들어갈 전세...... 라니까요?


그다음부터는 꽤, 수월했다. 물론 집을 먼저 계약해야 돈을 얼마나 빌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시스템 때문에 마음 졸여야 했던 것 빼고. (수능 점수에 맞춰서 대학가지 대학 원서 써넣고 수능 보나?) 자꾸 물건 나간다고 다그치는 부동산 사장님이랑 심리전 펼쳐야 하는 것도 빼고.(홈쇼핑 매진 임박은 일도 아니다. 정말) 잘 살고 계신 집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빼고 (낯가리는 성격이라니까요) 이체 한도 조정해서 억 소리 나는 금액 계좌 이체하면서 몇 번이나 확인하고 후덜덜 했던 것도 빼자. (다리에 힘도 같이 빠져나가더라)


한 두 푼 하는 금액도 아니고, 하루 이틀 머물 곳도 아닌데 집을 계약하는 것 정도는 학교에서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자영업자 되는 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분 적분은 필요 없어도 집은, 살아야 하니까. 집을 물질과 시간의 여유로움을 갖고 맘 편히 구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이가 훨씬 더 많을 텐데. 여러 과정,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다양한데.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의 도움도, 주변인의 교육도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집주인을 만나고, 적당히 마음에 드는 집에서 3년을 보냈지만. 집에 들어가 살기까지의 무탈한 모든 시간도, 실은 고단했다. 마음 졸이면서.


집을 구하는 순간에 내가 대한민국 어느 정도 수준에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고 그랬다. 결혼을 준비하는 내게. 보통은 그 이전까지 그 정도의 금액에 대해 절절히 느끼는 순간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솔직히 집을 구하는 순간엔, 부러웠다. 마음 편히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서울에 집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근데 돈도 돈인데, 아 이런 과정 안 거쳐도 되겠구나가 부러웠다. 좀 걱정 없이 당당하게 구하러 다니겠지..... 가. 삶에서 집이 걱정거리로 혹은 계속 고민해야 하는 무언가로 남지 않아도 되는 게. 그래서 아직도, 어디 집을 구매해서 돈이 올랐다는 이야기보다 서울 저-멀리 벗어난 곳에서 살며 생활에, 삶에 집을 고민하지 않는 처남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게 더 부우우우럽다. 철이 없는 건지 포기가 빠른 건지 모르겠지만, '벌기'위한 집이 아니라 '살기'위한 집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다시 이사를 하려니 그래도 한 번 해보았다고 조금 나았다. 정말 조금. 그래도 심적으로 낯설고 어려운 건 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익숙해질 때쯤이면.... 집으로 돈을 벌고 있는 거 아닐까?


2020.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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